며칠전 의정부지법에서 나온 판결이 화제가 됐다. 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촬영한 남성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에서 무죄가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피해자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이 나온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주로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들이다.
1심과 2심의 결론이 다른 것에서 짐작하듯 법률적으로 명쾌하게 가르마 타지는 사건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1심은 1심대로, 2심은 2심대로 나름의 법 해석을 적용했을 것이고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런 법률 지식이 내게는 없다. 다만 2019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 성 정체성이나 세계관이 평범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남자(특히 페미니즘에 별 관심이 없다)의 시각에서 봤을때 2심 판결은 그다지 상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백하건대 내게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은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레깅스 여성과 마주친 경험이 아직 없고 따라서 그런 기회가 왔을때 레깅스 하반신을 뚫어지게 주시했을지, 흘끔흘끔 곁눈질했을지, 아니면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을지는 확언할 수 없다. 아마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그 하반신이 단단한 대둔근과 대퇴근을 기반하여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곡선을 그린다고 가정해보자. 내 두눈은 '좀 보면 어떠냐'는 생물학적 충동과 '00아빠 왜 이래'라는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시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 여성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응큼한 시선과 그녀의 경멸서린 시선이 스파크를 일으킨다면?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내가 버스에서 레깅스 여성을 촬영한다면 그것은 성적 욕망에서 그리하는 것이고 그것이 부끄럽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 나아가 범죄라는 인식이 존재함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찍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뭐겠나. 대둔근 연구를 위해? 레깅스에 박힌 브랜드 로고가 마음에 들어서? 찍는 사람이 욕망했는데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보는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물론 나는 찍지 않는다. 절대다수 남자는 찍지 않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내 오른손을 옆의 승객이 휴대폰으로 찍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난 움찔하며 "뭐죠?"하고 물을 것이다. 상대는 "손이 참 고우시네요"라고 답변한다. 상대가 여성이라면 난 겁에 질릴 것이다. 영화 '미저리'의 여주인공 케시 베이츠를 마주할때 느낄 법한 그런 공포감이다. 남자라면? 순간적으로 역겨움과 노여움이 폭발하면서 '이걸 오른손으로 한대쳐야 하나' 고민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내가 느끼는건 성적 수치심, 모욕감이다. 니코틴에 찌든 중년의 내 손은 객관적으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세상에는 별의별 취향이 존재한다. 누가 그 손을 찍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쥐어패는 것은 사적구제 금지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좋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나는 그를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 뭘로? 성추행 혐의로.
세상에는 내 오른손보다는 레깅스 입은 젊은 여성의 하반신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눈으로 보는 것까지 뭐라 할수는 없다. 그게 불편하다면 레깅스를 안입어야 한다. 그러나 카메라 작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성추행으로 처벌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몸은 카메라에 안 찍힐 자유가 있다. 당신에겐 내 동의없이 그걸 찍을 자유가 없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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