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노동당 총비서)이 역대 가장 긴 5일에 걸친 노동당 전원회의를 마무리하면서도 대남·대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이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경색된 미북 관계에 대한 입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김 위원장은 침묵을 지켜 그 배경이 주목된다.
1일 조선중앙방송은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제8기 제4차 전원회의를 마치고 김 위원장이 "다사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 환경에 대처해 북남(남북)관계와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전술적 방향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 위원장은 문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북 이중적 태도와 적대 정책 철회를 선결과제로 내세운바 있다. 김 위원장의 침묵이 이같은 입장에 별다른 변화가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현 시점에서 북한이 주장해온 선결조건 등이 아무것도 해소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이런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불과 4개월여 남은데다 두달여 앞둔 대선을 통해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는 점에서 북한이 불확실한 대외 환경을 감안해 보다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양 교수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수위조절에 나선 것"이라며 "지금 공개하는게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 한미연합훈련 문제, 남한 선거, 미중관계 추이 등 향후 상황변화를 감안하면서 전술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올해도 대남, 대미관계에 적극 뛰어들 준비가 돼있지 않다는 상황을 나타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종전선언이나 미국과 대화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방역과 식량난 해결 등 '내치'에 보다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란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전원회의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올해 사업 못지 않게 방대하고도 중대한 다음해 사업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면서 무겁고도 책임적인 고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때문이란 분석이다. 정 센터장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지속되며 북한은 올해에도 계속 국경을 폐쇄하고 중국과 꼭 필요한 최소한의 교역만을 진행하면서 자력갱생에 의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만간 별도 방식을 통해 대남, 대미 메시지를 공개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별도 대외관계 담당 분과위원회까지 구성하며 국제정세와 환경에 대한 분석 및 평가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은 전원회의에서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 김성남 당 국제부장, 리선권 외무상이 주관하는 대남·대외관계 분과를 처음으로 구성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 10주기 추모대회에서 14번째로 호명되며 서열 상승이란 예상이 나왔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정치국 위원은 물론 후보위원에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 2021년도 주요 당 및 국가정책 집행정형(실태) 총화(결산)와 2022년도 사업계획 ▲ 2021년도 국가예산집행 정형과 2022년도 국가예산안 ▲ 사회주의 농촌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당면과업 ▲ 당 규약 일부 조항 수정 ▲ 당중앙지도기관 성원의 2021년 하반기 당조직 사상생활 정형 ▲ 조직문제 등 총 6개 의정이 상정됐고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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