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선을 넘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선균 분)의 말 한마디에서 드러나듯 냄새는 계급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영화에서 가장 밑바닥 계급이 바로 가정부 국문광(이정은 분)와 숨겨진 남편이자 지하생활자 오근세(박명훈 분)라 할 수 있다.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투유- 당신의 방향`에 나온 김재민이 작가의 `냄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https://img.mbn.co.kr/filewww/news/other/2022/02/23/202053300022.jpg)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투유- 당신의 방향`에 나온 김재민이 작가의 `냄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
눈밝은 작가 김재민이(47)는 이 영화 속 오근세의 출생기록에서 우연히 본인이 어릴때 살던 동네와 동일하다는 '디테일'을 발견한다. 영화속 주소지는 친구 부모님이 복숭아를 경작하는 과수원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작가는 '냄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2022년) 작품을 통해서 오근세의 출생지 부천과 국문광의 출생지 광명에서부터 서울 종로구 상류층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순례길로 만들었다. 태블릿 화면에 본인이 순례한 길을 지도 위에 표기해 보여주고, 본인이 수십㎞를 걸어간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을 뿐 아니라 순례를 마친후 일지를 만들고 일종의 기념품 같은 오브제를 만들어 책상 위에 진열했다.
영상 속 순례길을 따라가보면 도시 외곽지역일수록 정비되지 않고 각종 개발 행위가 진행되는 현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본인의 순례길 프로젝트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고 오근세의 궤적을 따라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이나 오류 인터체인지, 영등포구 대림동 특정 주소에서 인증샷을 올리면 특별히 그 지역 복숭아 절임 세트를 제공하는 이벤트(행사)도 함께 벌이고 있다. 아직 한명도 순례길에 동참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대담론이 빗겨간 변두리나 주변부 도시외곽 이야기에 천착해온 작가는 '냄새의 경계선1'과 '냄새의 경계선2'작품을 통해서도 용산과 나주에 있던 공장과 농장의 이동과정을 추적한다. 지방분권화로 만들어진 혁신도시가 최첨단 외관에도 불구하고 인근 돼지똥 악취로 시달리는 행태는 '돼지똥과 아파트'라는 비디오 영상 작업에 드러난다. 공장이나 농장이 주거지역 확장에 밀려 옮겨다니는 상황이 영화 '기생충'에서 꼬집은 냄새의 계층성과 밀접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같은 리서치 결과물을 아크릴로 만든 고시원 책상 안에 고이 전시돼 간접적으로 계급 상승의 욕망도 드러내는듯 싶다.
이 작품은 문화예술위원회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4월 24일까지 개최하는 올해 첫 주제기획전 '투 유: 당신의 방향' 2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팬데믹이후 이동이 제한되면서 그에 따른 변화가 사회 구조를 어떻게 바꾸었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물리적 이동은 물론 알고리즘이나 데이터 등 정보의 이동까지 다 아우르는 개념이다.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투 유: 당신의 방향`전에 출품된 김익현의 `그늘과 그림자(2022)`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https://img.mbn.co.kr/filewww/news/other/2022/02/23/052101622562.jpg)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투 유: 당신의 방향`전에 출품된 김익현의 `그늘과 그림자(2022)`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
김익현 작가(37)의 영상 작품 '그늘과 그림자'는 KT통신망 마비로 일상과 경제활동이 멈췄던 2018년 11월 24일부터 2021년 10월 25일까지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되다. 통신망 두절로 사진을 찍어도 전송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사진기 혹은 스마트폰 너머의 세상 그림자를 관찰한다. 코로나19로 이동에 제약이 생긴 상황과 통신망이 두절된 사건을 빗댄 아이디어가 빛난다. 김 작가는 사진을 기반으로 활동해 실재와 보이는 것,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연구하고 사진과 글쓰기로 표현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아르코미술관의 유아연 `벌레스크`(2021)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https://img.mbn.co.kr/filewww/news/other/2022/02/23/015600221556.jpg)
아르코미술관의 유아연 `벌레스크`(2021)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
1층 전시장에는 서빙 로봇 두 대가 마구 돌아다닌다. 유아연 작가(26)의 '공손한 님들'은 관람객이 입구에서 받은 진동벨이 울리면 전시장의 서빙로봇에게 반납하도록 했다. 작가는 이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노동의 주체는 삭제되고 결과만을 소비하는 구조를 보여준다.![아르코미술관의 `투 유: 당신의 방향` 주제기획전에 출품된 송예환의 `월드 와이드`(2022)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https://img.mbn.co.kr/filewww/news/other/2022/02/23/325252232020.jpg)
아르코미술관의 `투 유: 당신의 방향` 주제기획전에 출품된 송예환의 `월드 와이드`(2022) [사진 제공 = 아르코미술관]
이밖에도 면세품 소비촉진을 위해 도입된 무착륙 비행(정유진),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동 제약(닷페이스) 결코 공평하지 않은 가상세계 웹플랫폼(송예환)기후위기 난민가 새의 생존 경쟁을 게임으로 만들거나(오주영) 도시에서 밀려나는 중고 자동차시장이 드러내는 관계(송주원) 등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게임이나 설치물,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총 8명 작가의 작품 20여점을 통해 이동이라는 개념이 결국 권력과 배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젊은 세대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문화와 게임 등 다양한 소재로 작품들이 펼쳐져 있어서 코로나19 시대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술관 측은 전시 주제에 대해 담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오는 4월15일 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과 공동 기획으로 봄 학술대회를 열고, 협동조합 무의와 손잡고 장애인의 미술관 이용 설명서를 제작하는 워크숍도 준비했다. 입장료는 무료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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