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익숙한 Z세대들이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독립서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들 서점들은 독립 출판물만 취급하지 않고 낭독회, 독서모임, 시음회,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등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Z세대들을 사로잡았다. 요즘 Z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조금 낯선 테마의 독립서점 3곳을 직접 방문해봤다.
'스페인책방'은 서울 충무로역 인근에 위치한 이제 막 문을 연지 1년이 조금 넘은 독립서점이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을 헉헉거리면서 올라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스페인 현지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문 맞은편엔 주인이 스페인에서 직접 구매한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스페인 어느 골목의 작은 서점을 방문한 것 같은 이 책방은 남산이 다 보이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비추는 엽서들의 모습이 사뭇 낭만적이었다.
서점의 매대에는 '어쩌다보니 스페인이었습니다', '세계사를 품은 스페인의 요리 역사' 등 스페인 관련 독립 출판물과 원서들이 보였다. 반대편 매대로 눈을 돌려보니 최근 방송매체에서 많이 다뤄 더 유명해진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들도 볼 수 있었다. 책방 특성상 스페인 관련 책들만 있는줄 알았는데 오래 전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던 중남미 국가들의 서적도 심심치않게 눈에 띄었다. 이때문에 스페인을 다녀 왔거나 갈 예정인 사람들이 당연하게 찾는 필수 코스가 됐다고 한다.
책방 주인 에바 씨(가명)는 "스페인에서 직접 들여온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마치 스페인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 인기가 많다"면서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전공자 등도 서점에 방문해 경험과 추억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서촌에 위치한 한권의 서점은 매달 주제를 정해 그에 걸맞는 독립서적을 소개하고 책을 뜯어볼 수 있는 전시 등을 기획한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https://img.mbn.co.kr/filewww/news/other/2019/11/01/110101110177.jpg)
서촌에 위치한 한권의 서점은 매달 주제를 정해 그에 걸맞는 독립서적을 소개하고 책을 뜯어볼 수 있는 전시 등을 기획한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
서울 경복궁역에 내려 인파로 북적이는 서촌거리를 지나다 보면 보이는 '한권의 서점'은 매달 한권의 책만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점에 들어서니 정말로 딱 한가지 책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책들로 정신이 없어 그냥 베스트셀러 매대에 있는 책을 집어 들게 되는 대형서점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그동안 한권의 서점에서 판매했던 생각노트의 '도쿄의 디테일', 정웅의 '매일의 빵', 이슬아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 등은 다른 서점과 차별화한 특별한 방법을 활용했다.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영상과 사진 등으로 재구성해 입체감있는 전시로 소개한 것. 실제로 1일부터 판매되는 이경미의 '잘돼가? 무엇이든'이란 책도 몇장의 사진과 영상으로 꾸며져있었는데 이것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자니 마치 서점이 아닌 전시회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점 관계자는 "한 달에 한 권만 판매하다보니 다음달에는 어떤 책이 들어 왔을까 호기심에 계속 들르는 사람이 많다"면서 "서촌의 '사랑방' 처럼 편안히 머무르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답십리에 위치한 영화책방 35mm은 상시로 틀어지는 잔잔한 영화를 배경음악 삼아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https://img.mbn.co.kr/filewww/news/other/2019/11/01/112090111202.jpg)
답십리에 위치한 영화책방 35mm은 상시로 틀어지는 잔잔한 영화를 배경음악 삼아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
북적이는 도심에 있었던 앞선 두 책방과 달리 '영화책방 35mm'은 비교적 한산한(?) 답십리에 주소를 두고있다. 이곳은 지난 1960년대 영화 촬영 명소였던 답십리 촬영소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요한 거리 만큼이나 책방도 잔잔한 영화가 틀어졌기 때문인지 서재같은 안락함이 전해졌다. 독립영화 감독과 에세이 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이 책방은 두 가지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첫째는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를 피하는 것이고 둘째는 읽은 책만 입고하는 것이다. 기성 서점에서 발견하기 힘든 보석 같은 책을 팔아야 손님들의 꾸준한 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주인의 설명이었다.설명을 듣고 매대를 살펴보니 '모먼츠필름', '선량한 차별주의자', '아무튼, 비건' 등 주인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도서들은 정가로 팔리는데도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또 영화책방 답게 한쪽 벽면에선 이 달에 선정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그 옆엔 영화와 관련된 책과 굿즈가 전시돼 있었다. 이 책방에선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티브를 얻은 작품을 함께 읽는 '모티프'를 진행한다. 내년 1월부턴 고민을 들어주고 그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영화처방'도 진행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지쳤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이었다.
책방 주인 이미화 씨는 "책방을 찾아 독서모임 등을 형성하는 건 주로 영화를 사랑하는 매니아층"이라면서도 "바쁜 하루를 보낸 뒤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30대 직장인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3곳의 독립서점엔 공통점이 있었다. 책을 매개로 특별한 테마와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획일적인 것을 지양하고 남들과 차별화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Z세대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국에 각자의 개성을 담은 독립서점이 50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Z세대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서점문화를 만들어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디지털뉴스국 이세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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