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들 뿐 아니라 글로벌 주요 투자 은행들도 '중국판 스타벅스' 루이싱커피에 속은 대가로 주식 대량 '손절'에 나섰지만 거액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싱커피의 매출 부풀리기식 회계 장부 조작이 탄로난 결과 주가가 90% 폭락한 여파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크레딧스위스와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주요 투자 은행들이 루이싱커피에 속아 '마진 대출'(margin loans) 형식으로 돈을 빌려준 대가로 오히려 3억 달러(약 3642억 원)를 손해 볼 위기에 놓였다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또 이들 은행이 최근 앞다퉈 루이싱커피 주식 투매에 나섰지만 주가 폭락 탓에 손실만 봤고, 일부 은행은 아직 루이싱커피 주식 일부를 보유 중이어서 계속 '악몽'을 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초를 기준으로 루이싱커피가 밀린 마진 대출 채무는 총 5억1800만 달러다. 루이싱커피에 돈을 빌려준 주요 은행은 크레딧스위스와 모건스탠리(각각 9700만 달러), 하이퉁증권(1억3400만 달러), 골드만삭스(7300만 달러)와 바클레이스(7800만 달러), 중국국제금융공사(3900만 달러)다.
하지만 이들 은행이 루이싱커피가 대출 담보로 설정했던 회사 주식을 지난 두 달 동안 '패닉 셀'해서 건진 돈은 총 2억1000만 달러로 여전히 3억 여 달러 손실분이 존재한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지난 4월 6일 '루이싱커피 주식 매도'를 선언하면서 총 7635만 주를 내다 팔아 추가 손실을 일단락 지었다. 당일 하루 평군 주가는 3.18달러다. 이는 루이싱커피가 매출 부풀리기 식 회계 부정 사실을 공표하기 하루 전날인 4월 1일 주가(26.20달러)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격이다.
골드만삭스는 그나마 선방한 편이다. 다른 은행들이 앞다퉈 던지듯 내다 판 루이싱커피 주식 매도 평균 가격은 1주당 2.75달러다. 4월 1일(26.20달러)에 비하면 90%나 낮은 가격에 손해를 보고 판 셈이다.
은행들이 최종적으로 루이싱커피 자금 대출로 인해 얼마나 손실을 입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부 은행들이 담보로 잡아둔 루이싱커피 주식을 아직 전부 팔지 않았고, 현재로서는 주가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상장폐지 청문회'를 신청한 루이싱커피가 최종적으로 나스닥으로부터 상장폐지를 당할 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상장폐지 되지 않을 것에 베팅한 투자자들 몰리면서 16일 뉴욕 증시 나스닥에서 루이싱커피 주가는 하루 새 1.25%오른 4.0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골드만삭스와 달리 아직 루이싱커피 주식을 들고 있는 은행들도 있다. 다만 이날 블룸버그 통신은 크레딧스위스같은 은행에게 '꿈'같은 기업이었던 루이싱커피는 지금 '악몽'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루이싱커피가 상장 폐지 되지 않더라도 회사가 인정할 정도로 회계 부정 사실이 불거진 이상, 이전과 같은 주가 회복이 힘들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루이싱커피 주가 영향을 받는 이유는, 이들 은행이 루이싱커피의 성장성을 보고 '마진 대출'형식으로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마진 대출은 주택 담보 대출과 비슷한 형식이다. 집이 있어야 대출이 가능한 주택 담보 대출처럼 마진 대출은 주식 등 유가 증권이 있어야 가능하다. 주택 담보 대출처럼 마진 대출도 '대출 비율'(LVR·Loan to Value Ratio)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 실적이나 자금력, 주식시장에서 해당 기업의 시가 총액이 크고 좋을 수록 대출 비율이 놓다. 하지만 루이싱커피처럼 매출을 부풀린 기업은 실제 실적이 형편없기 때문에 은행들로서는 과다 대출을 해준 셈이고, 나중에 은행이 담보로 가진 루이싱커피 주식을 팔려고 해도 시장에서 이미 주가가 폭락한 상태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떼인 돈을 돌려받기 위해 루정야오 루이싱커피 회장을 상대로 회장 가족의 신탁 자금을 요구하는 등 여러가지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루정야오 루이싱커피 회장은 지난 달 공동성명을 통해 "나는 '컨셉을 판다'는 개념으로 사업을 했고 투자자들을 속일 의도가 없었다"면서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와 문제가 생겼지만 회사를 앞으로 더 성장시켜 사회를 위한 가치를 창출해낼 것"이라는 입장만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2일, 루이싱커피는 뉴욕 증시 개장 전에 2019년 매출이 해당 연도 매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약 22억 위안(약 3800억원) 부풀렸다는 점을 공표했고 주가 폭락 사태 속에 4월 7일부로 거래가 중단됐다. 작년 손실 규모는 아직 알 수 없다. 회계 부정 여파로 지난해 밝힌 1∼3분기 실적부터가 모두 무효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5월 12일 첸즈야 최고경영자(CEO)가 해임됐고, 나스닥은 같은 달 5월 19일 루이싱커피 에 상장폐지를 통보했다. 다만 루이싱커피 측 항변으로 청문회 기간이 주어지면서 5월 20일부로 일단 주식 거래가 재개됐다. 나스닥에서 청문회는 상장 기업 요청 후 30~45일 사이에 이뤄지는데, 이 기간 동안은 상장이 유지돼 거래가 가능하다.
아직까지 청문회 관련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최근 루이싱커피 주가가 들썩이는 데 대해 미국 투자 분석업체 모틀리풀은 "최근 루이싱 주가가 저점에서 300%나 뛰었다"면서 네 가지 배경을 꼽았다. 하나는 루이싱커피가 자산을 매각한다는 '루머', 두 번째는 루이싱커피가 더 큰 회사로 합병될 가능성이다. 다만 이 두 가지는 주가 폭등 재료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루이싱커피 주가 급등락의 가장 유력한 배경은 공매도 세력(short-sellers)이 포지션을 접는(close out their positions) 시나리오다. 공매도 세력이 포지션을 접는 경우 이들이 실제로 주식을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가가 오를 수 있다. 공매도란, 쉽게 말해 해당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해당 기업 주가가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주식 일정 분량을 다른 사람에게 빌린 후 일단 팔아버렸다가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자신이 빌렸던 만큼 주식을 사들여 되갚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공매도 세력이 A 주식 주가가 앞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경우 지금 1주당 100달러인 A 주식을 10주 빌리고 이를 바로 팔아 1000달러를 받는다. 이후 A 주식 가격이 공매도 세력 예상대로 1주당 50달러로 떨어지면 이 때 주식 10주를 사서 갚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 세력은 500달러를 최종 차익으로 남길 수 있다. 영화 '빅쇼트' 에서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 이런 위기에 베팅한 주인공들이 대표적인 공매도 세력이다. 공매도는 주로 실제 기업 상태와 주가 괴리가 커서 거품이 끼었다는 판단이 들 때 늘어난다.
공매도 외 또다른 배경은 루이싱의 나스닥 잔류를 점친 투기 세력의 매수 시나리오다. 다만 이런 경우 루이싱이 회계장부를 조작하기 앞서 실제 실적이 형편없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실제 수익성 지표가 나쁘기 때문에 결국은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볼 수 있다.
[김인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