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대사원(모스크)에서 대형 크레인이 쓰러져 1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가장 성스러운 이슬람 행사인 정기 성지순례(하지)를 열흘 앞둔 시점에 터진 이번 사고는 저유가와 예멘 내전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사우디에 또 하나의 악재를 추가했다. 일각에서는 동시 다발로 겹친 위기가 올해 취임한 살만 국왕의 지도력의 성패를 가를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A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민방위청은 11일 오후 5시 24분경(현지시간) 사우디 성지 메카의 대사원에서 공사용 대형 크레인이 쓰러져 최소 107명이 숨지고 238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대사원은 오는 21일 시작하는 이슬람 최대행사인 하지를 앞두고 시간당 순례객 300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증축 공사를 진행중이었다. 성지순례에 참여하는 무슬림이 최근 수년 새 크게 늘면서 압사 사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2006년 성지순례 당시 메카 부근의 미나 평지에서 360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1일 사고 당시 사원은 금요예배(주마)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 이집트 등지에서 수천명의 무슬림이 몰려 붐비는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천둥번개, 모래바람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러다 갑자기 대사원을 둘러싸고 있던 수십미터 높이의 크레인 한 기가 대사원 안쪽을 덮치면서 건물 외벽과 공사 구조물이 크게 파손됐다.
사우디에서는 정부의 과시욕과 안전불감증이 참사를 불러일으켰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우디 언론 알리야드는 “성지순례에 맞춰 공사를 조속히 끝내려고 서두른 것이 화를 키웠다”며 안전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슬람권 일각에서는 사우디 정부가 세를 과시하기 위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라’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대사원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키우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우디 정부는 저유가와 군사적 충돌로 악재가 많은 가운데 붕괴사고까지 발생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 경제는 최근 1년동안 40달러대에 머무르고 있는 유가 탓에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진데 이어 올 2분기에는 무려 -11.93%를 기록했다. 저유가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사우디 당국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정치적 형세도 사우디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6개월이 다 돼가는 예멘 내전 개입은 살만 국왕 즉위 2개월만에 전격 단행됐는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우디가 ‘중동판 베트남전’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TY)는 “저유가, 시리아 난민 사태 등으로 사우디의 고민이 커져가고 있다”며 “국제 정치와 경제 판세에서 사우디가 돌파구를 찾을지 지켜볼 일”이라고 밝혔다.
[김대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