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들이 북한 최고 명문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과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한다. 정부와 대학 차원 논의 이전의 학생들 차원 시도라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최고 학부간 교류·협력 움직임이라 교수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6일 총학생회 운영위원회(총운위)를 열고 '서울대·김일성종합대학 교류 추진 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총운위는 총학생회장과 각 단과대 학생회장들로 구성된 학내 대표 의사결정기구다. PD(People Democracy·민중민주주의)와 더불어 학생운동의 양대 축 중 하나인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 계열 단체인 '6·15 남북 공동선언 지지·이행을 위한 범서울대인 연석회의'가 제안한 이 안건은 이날 참석자 11명 중 과반의 지지(찬성 7명, 기권 3명, 반대 1명)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에도 같은 내용의 안건이 총운위에 상정됐지만 당시엔 찬성이 과반에 못미쳐 부결됐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학내 여론도 전향적으로 돌아섰다. 이 대학 총학생회장 신재용 씨(체육교육과·24)는 "지난달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일성종합대학과의 교류에 대해 학내에서는 부정적 여론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이라는 판문점 선언의 제목에서처럼 이 시기를 살아가는 대학생으로서 남북을 대표하는 대학 간 교류는 통일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데 구성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를 비롯해 교류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내 정치단체와 개인 등으로 구성되는 추진위는 오는 17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결성식을 갖는다. 신재용 총학생회장과 최승아 서울대 6·15 연석회의 의장(간호학과·22)이 공동추진위원장을 맡으며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1명도 지도교수로 참여할 계획이다. 통일부 승인을 받는 대로 김일성종합대책 측에 본격적인 교류·협력 논의를 제안할 계획이다.
학술토론회 활성화가 이들의 1차 목표다. 신 회장은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 문제는 남과 북이 공유하는 아픈 역사이자 결국 언젠가는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서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라며 "대학 차원에서 학술토론회를 정례화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최 의장은 "북한에 남아있는 고조선과 고구려 문화 유적지 탐방은 역사학계에도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의 교류 논의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이후 30년 만이다. 추진위는 올해 안으로 서울대 학생들이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해 3박 4일 동안 두 학교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일본 문제 토론회, 평양 문화유적 답사 등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8월 서울대 학생들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분단 이후 대학 역사상 최초가 될 전망이다. 조만간 통일부에 방북 승인을 요청할 예정이다.
정치 체제와 무관한 순수 학문 분야의 상호 교류는 남북의 학문 세계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교수들 사이에서 나온다. 김종암 서울대 우주항공공학 전공 교수는 "북한은 우주항공공학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강점이 있는 분야가 있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한 국가들에게 체제 전환 과정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분야가 경제·경영이었다"며 "향후 두 대학 간 교환학생을 통한 상호 학점 이수가 이뤄진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공부하고자 하는 북한 대학생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교 측도 학생들의 교류협력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대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태형철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만나 양교 간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과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데 학생들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북미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이 마무리되면 대학 간 교류협력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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