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이 지났다. 피해자도, 사건 현장도, 관계자들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칼에 찔려 숨진 피해자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아더 패터슨(37)과 에드워드 리(37)는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29일 3개월간 ‘이태원 살인사건’을 심리해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1997년 4월 3일 밤 10시께 이태원 햄버거가게의 남자화장실에서 조중필 씨(당시22세)를 칼로 찌른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게 1심 선고를 내렸다.
재판은 쉽지 않았다. 사건 직후였던 1998년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도 범인으로 지목된 리에게 무죄 취지의 선고를 내렸을 만큼 엇갈리는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가 명확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 가게에 함께 있었던 리와 패터슨의 10대 친구들은 이제 30대 중반이 돼 사건을 기억에서 지운 채 미국에 있었다. 증인 소환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혈흔형태분석 기법을 도입해 2011년 패터슨을 구속기소했다. 혈흔형태분석이란 사건 현장의 혈흔 위치, 크기, 모양 등을 통해 범인과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사건 현장을 재구성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혈흔분석가 이 모씨가 당시 찍힌 사진을 토대로 분석한 사건 현장은 패터슨보다 리의 진술과 일치했다. 이씨는 또 “화장실에 묻은 피의 양과 흔적을 봤을 때 가해자 몸에는 많은 피가 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직후 리의 옷에는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핏자국이, 패터슨에게는 ‘뒤집어 쓴 듯한’ 핏자국이 묻어있었기에 이런 진술은 패터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새롭게 떠오른 정황은 리와 패터슨 사이의 진실 공방에서 몇 가지 반전을 만들어냈다. 1997년 사건 직후 검찰 수사에서 리가 살인범으로 지목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증거에는 ‘범인은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라는 전문가 소견이 있었다. 동맥 부근의 찔린 상처에서 피가 강하게 튀었고, 위에서 아래로 향한 칼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이씨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몸을 잡아당기면 체구가 작아도 충분히 찌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검찰은 조씨가 배낭을 메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관계도 공소사실에 추가했다.
또 사건 당시 햄버거 가게에서 리와 패터슨과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리가 패터슨에게 ‘내가 뭔가 멋진 걸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칼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고 한 진술은 “둘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한 뒤, 리가 패터슨에게 칼을 건넸다”는 정황으로 바뀌었다.
(유죄일 경우) 검찰은 이번 판결로 16년 전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용의자를 놓쳤던 점은 설욕했다. 그러나 아직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판결은 남아있다. 19년 전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던 리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뒤집혔다. 검찰이 제시한 정황 증거가 2심 등에서 깨질 경우 사건은 다시 ‘영구미제’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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