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꿈을 꾼다. '로또 1등에 한번 당첨이 돼 봤으면…'이라고. 1등 당첨금을 요리조리 쓰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만으로 행복하지만 막상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실제 그러한 행복을 누릴 때면 배가 아픈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로또 1등 당첨자 후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면 각종 악성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어디 5년 뒤에도 웃고 있나 봅시다”, "도박으로 다 날리지나 마시요” 등의 댓글부터 "인생 똑바로 살아”라는 막무가내식 조언까지 다양하다.
3년전 로또 477회에서 1등으로 당첨된 한호성(42세·가명·사진)씨 역시 그랬다. 당첨금 19억2000만원 중 세금을 제하고 약 13억원을 수령한 그는 당시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실천한 재테크 방법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만큼 유명세를 치러야 했고, 달린 악성 댓글에 마음 고생을 했다.
"수많은 댓글 중에서도 '5년 뒤 한번 봅시다'란 말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입술을 굳게 깨물고 있더라고요. '그래, 절대 돈을 흥청망청쓰지 않겠어. 돈 때문에 다시는 망가지지 않겠어'라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죠.”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그의 다짐대로 돈을 낭비하거나 돈 때문에 쩔쩔매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빚을 청산한 후 회복한 자신감 덕분에 로또 1등 당첨자들 사이 멘토로 활동할 정도로 활발한 인생을 살고 있다.
한씨가 로또 1등에 당첨되자마자 한 일은 5억원에 달하는 부모님의 빚을 갚는 것이었다. 이어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구하는 데 5억8000만원을 썼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은행에 돈을 묶어 놓은 채 일절 쓰지 않았다는 그는 현재 3억원 가량의 현금을 가지고 있다. 보유한 집까지 고려하면 8억원대의 자산가다.
한씨는 "지난 3년간 당첨금의 절반 이상을 어디 도망가지 않게 잘 지켰으니 잘 한 것 아니냐”며 "자산을 불리는 데 욕심은 따로 없어 노후 자금으로 계속 묻어둘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계획대로라면 향후 2년 뒤에도 당첨금의 절반 이상은 수중에 있는 셈이니 "5년 뒤 한번 봅시다”라고 말한 네티즌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씨는 덧붙였다.
사실 로또 1등 당첨자들 중에는 큰 돈을 한번에 만지다보니 도박에 쉽게 빠지거나, 멋모르고 사업을 시작해 망하는 경우가 많다. 잊을만할 때쯤이면 등장하는 로또 1등 당첨자들의 비참한 말로에 관한 소식은 이같은 사실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뉴스에 등장하는 로또 1등 당첨자들의 부정적인 사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빚으로부터 탈출해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한씨의 주장이다.
그는 "매주 평균 7명씩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오는 요즘이다”며 "계산해보면 지금까지 4300여명의 1등 당첨자가 나온 셈인데, 도박에 중독됐다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는 솔직히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로또 1등 당첨자들에게 무턱대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필요는 없다는 것.
한씨가 다른 당첨자들과 달리 돈을 허투로 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생업을 위해 해오던 일이 따로 있었던 이유가 크다.
비록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한씨는 가구 등 소품 인테리어 작업을 로또 1등 당첨 이후에도 줄곧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제빵 기술을따로 배워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판매하는 중이다. 그가 이렇게 해서 한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달에 300만~400만원에 달한다.
한씨는 "3년전 부모님 빚 독촉에 하루하루 피 말리는 생활을 했었을 뿐, 빚을 제외하고선 밥벌이하고 사는 데 문제는 없었다”며 "빚없이 살고 있는 요즘, 한달에 100만원만 벌어도 행복하다는 생각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20~30대에 로또 1등에 당첨된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큰 돈을 갖다보니 학업을 중단하거나 직장을 관두고 너무나 쉽게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가 잘 하는 일도 아닌데 돈이면 다 해결될 것이란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을 볼 때면 친동생 같은 마음에 극구 말리고 싶다고 했다.
"60~70대에 1등에 당첨되신 분들이야 당첨금을 자유롭게 쓰신다고 한들 말릴 이유가 없어요. 그러나 젊은 친구들이 정말 어떤 사업 경험 없이 돈이면 다 잘 될줄 알고 사업을 한다고 할 때면 너무 위험해 보여요. 로또 1등 당첨이라는 게 내 복도 있지만 주변의 기원이 담겨 있는 것인데….”
5억원에 달하는 빚을 완납했다는 서류를 받았을 때의 쾌감을 절대 잊을 수 없다는 한씨는 그와 같은 초심을 잃지 말 것을 20~30대 로또 1등 당첨자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로또를 시작하는 이유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빚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1등 당첨금을 통해 빚없이 살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기 때문에 더 큰 욕심을 내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이같은 조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그는 비록 로또 1등 당첨자로서의 설렘은 사라졌지만 이를 대신한 무덤덤함이 더욱 편하게 다가왔다.
[매경닷컴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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