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하는 구간의 해수면 온도가 확실히 낮아서 더 이상 에너지를 받기 힘든데다가 제트기류 영향으로 중심축까지 흔들려 곧 소멸될 것 같은데요."
지난 4일 오후, 제주도에는 봄비가 추적추적내리고 있었지만 서귀포시의 작은 연구원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주제는 꽃샘추위가 아닌 서귀포에서 3000㎞도 넘게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풍이었다.
15명의 연구원이 북서태평양발 태풍을 분석하는 이 곳 국가태풍센터는 2008년 제주도에 문을 열었다. 제주도는 내륙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태풍을 포함해 한반도에 오는 거의 모든 태풍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받는 곳이다. 태풍이 생성되는 열대 해상의 움직임과 대기활동같은 수많은 기초 관측자료와 수치모델 등 시뮬레이션을 통해 태풍의 발생과 진로방향, 세기를 예측한다. 갈팡질팡하던 태풍예보 정확도는 2008년 센터 개소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대피 전략의 핵심 근거가 되는 48시간 진로예측에 대해서는 태풍의 진로에 대한 예측치와 실제로 지나간 위치 사이의 거리로 계산되는 오차수준이 지난해 일본을 따라잡았다. 금년부터는 지난해 있었던 태풍들을 대상으로 태풍의 중심 위치와 최대풍속 등 자료를 다시 분석해 정리하는 '태풍 베스트트랙'을 독자적으로 시범 산출해 더 높은 정확성을 기한다. 태풍 베스트트랙은 실황 분석의 오차를 인정하고 실황 분석 이후 수집된 자료로 태풍관련 데이터를 보완하는 것이다. 미국 등 태풍에 대한 연구 역사가 깊은 선진국에서는 50년간 이상된 축적된 베스트트랙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자료가 없어 외국 태풍연구기관이 발표한 베스트 트랙을 활용해왔다.
국가태풍센터는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에 대해 365일 24시간 감시하고 연구한다. 태풍센터는 올해 발생한 3개의 태풍 중 현재 괌 북동쪽 해상에서 이동중인 제 3호 태풍 파사이에 대해 열띤 분석중이다. 물론 한반도에 다가오는 태풍에 더 민감하게 대처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중 발생하는 모든 태풍을 연구하고 진로를 예측한다. 충분한 지식 축적이 정확한 예보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급박한 예보상황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예보관들의 '감'이 1년 내내 무뎌지지 않기 위함이다. 신도식 국가태풍센터장은 "매년 약 26개 정도의 태풍이 발생하지만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서너개 수준이고 그나마도 최근 10년간 평균은 3개 미만으로 떨어졌다"며 "대신 개별 태풍의 강도는 점차 강화되는 추세라 피해액은 오히려 늘어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는 제주도와 남해 일부지역에 피해를 준 다나스 이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어 태풍예비비 1조원의 예산이 절약되는 행운이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행운'이라는 것이 연구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올해도 세계적으로 점차 강력해지는 태풍 추세의 예외가 되진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장기호 전략운영팀장은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순간풍속이 100㎧를 넘었던'하이옌'같은 슈퍼 태풍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온난화로 인해 태풍의 핵심 에너지원인 해수면 온도가 점차 상승하면서 '매미'나 '루사'수준의 대형 태풍은 앞으로 더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순간최대풍속 순으로 줄세운 1904년 이후 역대 태풍강도 순위에서 상위 다섯개를 모두 2000년 이후 발생한 태풍이 차지하고 있다(1위는 매미 60㎧). 지난 10년간 태풍으로 인한 피해액은 14조원에 육박하는데 이는 그 외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큰 규모다.
"연구한다고 해서 태풍이 생성되는 것까진 막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태풍 정보를 지금보다 20분만 빨리 알릴 수 있어도 연간 7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분야죠."
[서귀포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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