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주시면 좋은 소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기존 야당 대표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대표가 이번에는 대구에서 시스템 공천을 골자로 하는 더민주 혁신안을 수정할 의지를 드러냈다. 8일 대구를 찾아 김부겸 전 의원 등 예비 후보들을 만난 김 대표는 하위 20% 컷오프(공천 배제)’에 포함돼 더민주를 탈당한 홍의락 의원의 구제 여부에 대해 “당의 전략상 지금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제가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갖고 있기에 정치적인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할 사항이니 판단을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이날 김 대표는 “저는 (컷오프) 봉투를 열지 말자고 했지만, 당 혁신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열어야 한다고 해서 열었더니, 오늘 같은 상황이 초래됐다”며 혁신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또다시 내비쳤다.
더민주 비례대표였던 홍 의원은 대구 북구을 출마를 위해 뛰던 도중 공천 배제 결정에 반발해 탈당했다. 이로 인해 김 전 의원을 중심으로 ‘더민주가 대구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 대표는 그동안 더민주를 포함한 야권이 ‘성역’으로 여겨온 부분들에 대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 7일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노조가 너무 사회적인 문제에 집착하면 근로자 권익보호는 상당히 소외되는 것 같다”며 ‘직격탄’을 날렸고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유효시점이 지난 햇볕정책은 진일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대표가 ‘광폭 행보’를 이어가면서 총선 이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김 대표는 향후 거취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비례대표를 맡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내며 총선 이후 물러날 것을 암시하는 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김 대표는 최근 언론을 통해 “정치를 원포인트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총선 이후에도 일정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총선 결과를 지켜봐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킹메이커’ 역할이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김 대표가 말을 허투루 할 분은 아니니 물러나겠다는 말을 믿는다. ‘내 역할은 총선까지다’는 분위기가 현재 김 대표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관철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면서도 “더민주가 총선에서 선전을 하면 주위에서 ‘수고했는데 그냥 물러날 수 없으니 대선까지 봐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 지금 분위기에서 ‘킹메이커’ 역할은 충실히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직접 대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한 정치 관계자는 “비례대표를 네 차례 한 김 대표가 짧은 기간 야당 대표하려고 물러날 리는 없다”며 “본인이 직접 ‘킹’을 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총선 이후를 감안할 경우 문재인 전 대표와의 관계가 변수다. 문 대표가 강조했던 ‘혁신안’을 뜯어고치고, 대북정책 등 각종 이슈에서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관계가 불편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대선을 위해서는 둘이 손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김 대표는 7일 전략공천·단수후보 우선 추천 지역을 선정하면서 ‘친노’ 인사들을 내쳤지만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를 대거 배치하며 문 전 대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 교수는 “사실 김 대표가 조금 지나치게 권력행사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문 전 대표가 가만히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서로 양해가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의 ‘광폭 행보’에 문 전 대표가 제동을 걸지 않는 것도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총선 이후에도 김 대표에게 ‘산토끼 잡기‘라는 외연 확장을 맡기고, 문 전 대표는 ‘집토끼’인 기존 지지층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중도층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비판이 필수적이다”며 “김 대표 입장에서는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석환 기자 / 대구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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