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대본 초고가 나오면 저희는 배우들보다도 더 빨리 대본을 받아 봐요. 차질 없이 촬영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제일 먼저 준비하고 움직이는 팀이 소품팀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극이나 시대극과는 달리 현대극의 경우는 역사적 고증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만약 촬영 중 소품이 고장이 나거나, 특정 소품이 급하게 필요하게 되면 주변에서 급하게 구매해 활용할 수도 있다. 물을 마시는 컵 하나도 당시대와 맞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지적이 빗발치는 사극과는 달리 소품 콘셉트에 있어서 자유롭다.
그럼에도 소품팀은 여전히 고달프다. 여전히 작가와 PD가 원하는 바를 파악해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증이 사라진 자리에 PPL이 들어섰다. 결국 현대극 소품팀의 시간 역시 사극의 소품팀과 다를 바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 PPL이 뭐기에..
현대극에서 소품은 드라마 제작은 PPL(방송에 기업 상품을 배치해 시청자들 무의식 속에 상품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심는 간접광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극 소품팀이 ‘사료와의 전쟁’이라면 현대극 소품팀은 ‘PPL과의 전쟁’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 중이었어요. 당시 촬영 장소가 어느 한 레스토랑이라서 드라마 분위기에 맞게 테이블 세팅을 맞춰 놨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레스토랑에 있던 테이블을 모두 바꾸라고 하는 거예요. 그놈의 PPL이 뭔지…. 어쩔 수 있나요. 안 된다는 식당 주인 붙잡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교체했어요. 사실 허락도 간신히 받은 거라서, 식당 측에 도움 하나 못 받고, 설치하고 치우고 또 설치하고 하는 작업을 반복했죠.”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말한 한 방송국 소품팀 관계자는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PPL이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PPL로 울고 웃는 소품팀의 비애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PPL에 대해 간단하게 알 필요가 있다. 오늘날 드라마에서 PPL은 단순히 콘텐츠 내에서 소품을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된다.
지원 형태에 따라 PPL에 대해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대중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형태는 특정 영화나 프로그램에 많은 금액을 제작비로 지원하고 기업의 제품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첫 번째 형태보다는 적지만 만만치 않은 금액의 제작비를 협찬한 후 기업이나 브랜드 로고, 상호, 간판 등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독점적인 브랜드 노출을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콘텐츠 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프로그램과 구분하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다.
이 중에서 소품팀들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PPL은 콘텐츠에 필요한 의상과 가구 등의 소품을 협찬 받는 형태다. 붙박이 가구에서부터 커튼 리본매듭까지 세세하게 챙길 것이 많은 소품팀은 제한된 제작피 안에서 필요한 소품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특정 업체와 PPL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일명 ‘소도구 PPL’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극에서 필요한 소품들을 제공받는 대신 이를 세트장에 배치하면서 PPL효과를 제공한다.
“작품을 들어가게 되면 이와 같은 소품들을 준비하기 위해 ‘소도구 PPL’를 준비해요. 관련 업체와 이야기를 통해 다 마련했는데, 갑자기 연출제작 팀에서 다른 업체의 물품으로 교체하라고 이야기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소도구PPL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작비 지원 형식의 PPL이 진행된 거죠. 이렇게 저희가 준비한 것을 못 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정말 속상하죠.”
◆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소품팀 이야기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자마자 소품팀들은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극의 배경을 꾸미는 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특수 직업군을 가질수록 소품팀의 준비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변호사 배지만으로 큰 설명 없이 극중 인물의 직업이 변호사임을 알려주듯, 소품 하나 만으로 극중 캐릭터들의 직업과 특징을 결정짓는 만큼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극에서 복선의 장치로 사용되거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 소품이 필요할 경우 깊은 대본분석과 감독과의 치열한 논의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아마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선생님께서 최근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저 아닐까 싶어요. ‘왔다 장보리’ 제작이 확정된 이후 매일같이 박술녀 선생님을 찾아뵈어 계속 인터뷰 하고, 한복디자이너는 어떤 물품들을 사용하는지 공부하며 조사하는 작업을 반복했었거든요. 극중 캐릭터들이 필요한 소품들을 발굴하기 위해서요.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마치면 다음은 감독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요. 아무래도 드라마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이는 바로 감독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다음은 조명과 카메라 동선을 파악해요. 조명이나 카메라 동선에 따라 소품들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만큼, 작은 장식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놀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제작과 배치까지 끝내면 촬영이 시작돼요. 배치를 다 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모니터링을 통해 제대로 놓인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거든요. 결국 촬영의 시작부터 끝까지 촬영장을 떠나지를 못해요.”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 소품팀)
이렇게 열정으로 소품을 준비하지만 때로는 허탈한 순간도 있다. 열심히 준비한 소품들이 극의 흐름에 따라 편집이 될 경우다. 물론 방송시간이 한정돼 있는 만큼 극의 편집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작은 디테일까지 살리며 애써 준비했는데 카메라에 비춰지지 않을 경우 속상한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1회 워터파크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 호텔 이용객들이 워터파크에서 파티를 즐긴다는 콘셉트였는데, 소품을 준비하기 전 감독에게 혹시 특별히 요청하는 소품은 없느냐 물었죠. 그랬더니 이용객에게 전해주는 기념품을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워터파크에 온 손님들에게 호텔이 줄 수 있는 가장 센스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부터 시작해서 여러 개의 기념품을 예쁘게 포장해서 준비했고, 감독 역시 만족해했었죠. 하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모두 편집됐어요. 시간과 흐름상 어쩔 수 없었던 거죠. 속상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죠.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고, 어차피 편집은 저의 권한이 아닌걸요.” (MBC 주말드라마 ‘호텔킹’ 소품팀)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하나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땀과 수고 노력들이 들어갑니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미쳐 볼 수 없었던 이들의 노력과 고충, 혹은 촬영장에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 등 TV를 통해 들려주지 못했던 TV 속 다양한 뒷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대본 초고가 나오면 저희는 배우들보다도 더 빨리 대본을 받아 봐요. 차질 없이 촬영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제일 먼저 준비하고 움직이는 팀이 소품팀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극이나 시대극과는 달리 현대극의 경우는 역사적 고증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만약 촬영 중 소품이 고장이 나거나, 특정 소품이 급하게 필요하게 되면 주변에서 급하게 구매해 활용할 수도 있다. 물을 마시는 컵 하나도 당시대와 맞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지적이 빗발치는 사극과는 달리 소품 콘셉트에 있어서 자유롭다.
그럼에도 소품팀은 여전히 고달프다. 여전히 작가와 PD가 원하는 바를 파악해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증이 사라진 자리에 PPL이 들어섰다. 결국 현대극 소품팀의 시간 역시 사극의 소품팀과 다를 바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 PPL이 뭐기에..
현대극에서 소품은 드라마 제작은 PPL(방송에 기업 상품을 배치해 시청자들 무의식 속에 상품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심는 간접광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극 소품팀이 ‘사료와의 전쟁’이라면 현대극 소품팀은 ‘PPL과의 전쟁’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 중이었어요. 당시 촬영 장소가 어느 한 레스토랑이라서 드라마 분위기에 맞게 테이블 세팅을 맞춰 놨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레스토랑에 있던 테이블을 모두 바꾸라고 하는 거예요. 그놈의 PPL이 뭔지…. 어쩔 수 있나요. 안 된다는 식당 주인 붙잡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교체했어요. 사실 허락도 간신히 받은 거라서, 식당 측에 도움 하나 못 받고, 설치하고 치우고 또 설치하고 하는 작업을 반복했죠.”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말한 한 방송국 소품팀 관계자는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PPL이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PPL로 울고 웃는 소품팀의 비애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PPL에 대해 간단하게 알 필요가 있다. 오늘날 드라마에서 PPL은 단순히 콘텐츠 내에서 소품을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된다.
지원 형태에 따라 PPL에 대해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대중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형태는 특정 영화나 프로그램에 많은 금액을 제작비로 지원하고 기업의 제품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첫 번째 형태보다는 적지만 만만치 않은 금액의 제작비를 협찬한 후 기업이나 브랜드 로고, 상호, 간판 등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독점적인 브랜드 노출을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콘텐츠 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프로그램과 구분하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다.
이 중에서 소품팀들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PPL은 콘텐츠에 필요한 의상과 가구 등의 소품을 협찬 받는 형태다. 붙박이 가구에서부터 커튼 리본매듭까지 세세하게 챙길 것이 많은 소품팀은 제한된 제작피 안에서 필요한 소품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특정 업체와 PPL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일명 ‘소도구 PPL’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극에서 필요한 소품들을 제공받는 대신 이를 세트장에 배치하면서 PPL효과를 제공한다.
“작품을 들어가게 되면 이와 같은 소품들을 준비하기 위해 ‘소도구 PPL’를 준비해요. 관련 업체와 이야기를 통해 다 마련했는데, 갑자기 연출제작 팀에서 다른 업체의 물품으로 교체하라고 이야기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소도구PPL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작비 지원 형식의 PPL이 진행된 거죠. 이렇게 저희가 준비한 것을 못 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정말 속상하죠.”
◆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소품팀 이야기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자마자 소품팀들은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극의 배경을 꾸미는 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특수 직업군을 가질수록 소품팀의 준비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변호사 배지만으로 큰 설명 없이 극중 인물의 직업이 변호사임을 알려주듯, 소품 하나 만으로 극중 캐릭터들의 직업과 특징을 결정짓는 만큼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극에서 복선의 장치로 사용되거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 소품이 필요할 경우 깊은 대본분석과 감독과의 치열한 논의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아마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선생님께서 최근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저 아닐까 싶어요. ‘왔다 장보리’ 제작이 확정된 이후 매일같이 박술녀 선생님을 찾아뵈어 계속 인터뷰 하고, 한복디자이너는 어떤 물품들을 사용하는지 공부하며 조사하는 작업을 반복했었거든요. 극중 캐릭터들이 필요한 소품들을 발굴하기 위해서요.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를 마치면 다음은 감독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요. 아무래도 드라마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이는 바로 감독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다음은 조명과 카메라 동선을 파악해요. 조명이나 카메라 동선에 따라 소품들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만큼, 작은 장식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놀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제작과 배치까지 끝내면 촬영이 시작돼요. 배치를 다 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에요. 모니터링을 통해 제대로 놓인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거든요. 결국 촬영의 시작부터 끝까지 촬영장을 떠나지를 못해요.”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 소품팀)
이렇게 열정으로 소품을 준비하지만 때로는 허탈한 순간도 있다. 열심히 준비한 소품들이 극의 흐름에 따라 편집이 될 경우다. 물론 방송시간이 한정돼 있는 만큼 극의 편집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작은 디테일까지 살리며 애써 준비했는데 카메라에 비춰지지 않을 경우 속상한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1회 워터파크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 호텔 이용객들이 워터파크에서 파티를 즐긴다는 콘셉트였는데, 소품을 준비하기 전 감독에게 혹시 특별히 요청하는 소품은 없느냐 물었죠. 그랬더니 이용객에게 전해주는 기념품을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워터파크에 온 손님들에게 호텔이 줄 수 있는 가장 센스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부터 시작해서 여러 개의 기념품을 예쁘게 포장해서 준비했고, 감독 역시 만족해했었죠. 하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모두 편집됐어요. 시간과 흐름상 어쩔 수 없었던 거죠. 속상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죠.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고, 어차피 편집은 저의 권한이 아닌걸요.” (MBC 주말드라마 ‘호텔킹’ 소품팀)
‘호텔킹’에서 워터파크 파티 장면. 음식 세팅 및 모든 장식은 소품팀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위) 비록 시간여건상 통편집돼 만나볼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된 호텔 기념품들은 소품팀의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사진=MBC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