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우리의 많은 일상을 바꿨다. 자의적·타의적 언택트를 경험하면서 누군가를 쉽게 만날 수도 볼 수도 없게 됐다. 사적인 소통, 사회적 소통 모두 닫혔다. 채팅, 문자, 전화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실 소통'이 아닌 대안에 불과하다.
자신을 대변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말이 달라질까. 손짓과 몸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상대와 눈도 마주치며 대화하는 현실과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답은 '아바타'에 있다. 일명 '부캐'를 가상공간에 소환해 사람들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가 열렸다.
그 동안 VR산업은 높은 진입 장벽과 콘텐츠 부족으로 침체기를 겪어 왔던 게 사실이다. 특히 VR 기술이 왜 필요한지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한 까닭에 더 이상의 확산과 진전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페이스북 호라이즌 [사진 출처 = 오큘러스]
하지만 코로나19로 급작스럽게 언택트(비대면) 시대로 접어들면서 어느 때보다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의 수단이 필요해졌다. VR과 아바타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다.코로나19 발생 전 이미 VR기술을 통한 소통의 힘에 주목한 IT 기업들은 VR산업에 앞다퉈 투자를 했고, 관련 기술력을 꾸준히 높여왔다.
이 분야에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페이스북이다. 2014년 VR 헤드셋 개발 업체 오큘러스 인수로 VR 산업에 뛰어든 페이스북은 2017년 가상 소셜 플랫폼 '페이스북 스페이스'를 발표했다. 당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SNS나 채팅에 국한되지 않고 가상세계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매개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는다.
페이스북 코덱 아바타 구현 장면. 왼쪽이 실제 사람, 오른쪽이 아바타다. [사진 출처 = 페이스북]
동력을 얻은 페이스북은 지난해 9월 VR 커뮤니티 기술을 집약한 VR 월드 '페이스북 호라이즌'을 선보였다. 페이스북 호라이즌은 2002년 등장해 미국서 인기를 끌었던 '세컨드 라이프'처럼 가상공간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VR헤드셋을 쓰면 눈앞에 가상공간이 펼쳐지고, 그 공간 속에서 멀리 떨어진 친구와 만나 이야기하거나 함께 게임을 즐기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페이스북은 실제 내 모습을 완벽하게 3D 아바타로 구현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코덱 아바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3D 캡처 기술과 AI 시스템을 접목해 사실적인 아바타를 만드는 기술이다. 정교한 걸로 따지면 현재 구현된 아바타 중 으뜸이다. 얼굴 표정부터 미세한 주름, 입모양 등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 인수 후 5억 달러(약 6000억원)를 VR사업에 투자하는 등 VR사업에 온 역량을 쏟고 있다.
버추얼 소셜 월드 [사진 출처 = SK텔레콤]
코덱 아바타 연구가 완료되면 사람들은 가상현실에서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다. 페이스북 측은 "사실적인 아바타를 실시간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다"라며 "추후 별도의 장치나 데이터 없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자체로 아바타를 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11월 SK텔레콤은 가상세계에서 커뮤니티 및 다양한 활동을 하는 '버추얼 소셜 월드'를 공개했다. 전반적인 콘셉트는 페이스북 호라이즌과 닮아 있다. 버추얼 소셜 월드는 다수의 VR 이용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한 가상 세계에서 커뮤니티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타인들과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서비스다.
스페이셜 3D 원격회의 장면 [사진 출처 = 스페이셜]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를 생성하고 꾸며, 가상공간에서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방식이다. 이용자는 아바타 머리 스타일, 눈·코·입, 복장 등을 꾸미고 개인 공간인 마이룸에서 VR 영화를 보거나 동물을 키울 수 있다. 또 타인과 다양한 가상공간에서 만나 소통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버추얼 소셜 월드는 오큘러스나 VR을 갖고 있는 고객이라면 무료로 점프 VR 앱을 다운로드 받아 이용 할 수 있다. 올 상반기 SK텔레콤은 버추얼 소셜 월드를 모바일로도 구현하는데 성공을 했다. 이에 따라 없이 스마트폰에서도 가능해져 VR기기·모바일 이용자가 하나의 가상세계에서 어울릴 수 있게 됐다.
전진수 SK텔레콤 5GX서비스사업본부장(상무)은 이와 관련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가상의 공간에서 또 다른 나를 창조하고, 현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됐다"며 "멀리있는 타인과 한 공간에서 마주보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듯한 진정한 서비스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킹스맨'에서 각자 다른 곳에 있는 요원들이 3D 홀로그램으로 한 공간에서 원격회의 하는 모습도 현실화됐다. VR·AR 협업 플랫폼 개발 스타트업 스페이셜은 3D 원격회의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영화에서처럼 홀로그램은 아니지만 실물과 같은 아바타 형태를 소환해 멀리 있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
스페이셜을 이용하려면 홈페이지에 가입한 후 VR·AR기기를 사용하면 된다. 데스크탑과 휴대폰만 보유해도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웹사이트에 접속해 3차원으로 진행되는 미팅 몰입감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스페이셜은 단 한 장의 사진을 활용해 15초 만에 진짜 같은 3D 아바타를 만든다. 이 과정에는 머신러닝 기술이 활용된다.
회의가 시작되면 기기 센서가 사용자 눈과 손 동작을 파악해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단순히 사용자 움직임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3D 모델, 문서, 비디오 등 다양한 자료를 공간에 띄우거나 공유할 수 있다. 손을 움직여 문서를 열거나 3D 모델의 크기를 키울 수도 있다.
이진하 스페이셜 공동창업자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줌(Zoom)과 같은 영상회의 앱 활용도가 높아졌지만 제대로 된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며 "영상회의는 참여자가 5~6명만 넘어도 양방향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느끼면서 유대감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게 소통"이라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바로 옆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소통할 수 있는 AR·VR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이라고 강조했다.
스페이셜의 현재(올해 1월 기준)까지 총 2200만 달러(약 260억원)의 AR 관련 투자도 유치했다. AR 협업 분야 스타트업 투자유치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이 밖에 소셜 VR로 대표적인 곳은 브이타임, 알트스페이스 VR, VR챗 등이 있다. 브이타임은 VR에 특화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운영하며, 알트스페이스 VR은 소셜 가상현실 시스템을 개발했다. VR챗은 가상공간에서 채팅할 수 있도록 한 소셜 VR 앱이다. 이들 소셜 VR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용률이 급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소통 수단인 전화나 채팅 등은 물리적인 거리를 전제로 단순히 음성, 문자, 영상을 이용해 대화를 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소셜 VR은 가상현실에서 직접 마주보며 자신의 손동작과 움직임을 통해 실제 만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며 "언택트 시대에 접어든 현시점에서 성장성과 미래의 가치는 그 어떤 분야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영덕 기자 byd@mkinternet.com /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