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아이리버 인수를 추진한다.
SK텔레콤은 3일 아이리버 최대주주인 보고펀드 측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확인했다. 이번 인수로 SK텔레콤은 자사 통신서비스에 아이리버의 고음질 음원 재생 기기 등을 결합하는 식의 모델을 염두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 가격 200억~300억원 수준
3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을 앞두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이리버는 MP3 시장에서 공고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국내 최대 음향기기 제조업체로 한 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휴대전화 내 MP3 기능이 보편화되면서 하향길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아이리버가 손을 놓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MP3 이외에도 포터블미디어플레이어(PMP), 아몰레드를 장착한 MP4플레이어, 전자사전, 전자책, 태블릿PC, 자급제 스마트폰, 블랙박스, 피트니스 기기, 유아용 미디어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개념 기기를 내놓으면서 공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기업이 선점하고 있던 시장이라 자리를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7년 보고펀드가 인수에 나설 때만 해도 아이리버(구 레인콤)의 인수가는 600억원에 달했다"면서 "현재 인수 후보들간 희망가는 300억원 정도로 매각가가 절반 이상 떨어진 것만 봐도 상황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보고펀드가 가진 아이리버 주식 34.5%의 현 가치는 300억원을 밑돈다. 빠른 매각을 위해 예비입찰 과정을 생략하는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투자업계는 200억원대에서 매각이 결정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아이리버의 현 시가총액은 400억원정도다.
◆아이리버-SK텔레콤, 시너지 가능할까?
SK텔레콤 인수추진설에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30%포인트 넘게 급등한 아이리버는 이날 역시 상승세를 이어갔다.
아이리버의 최대주주인 보고펀드가 인수 가격 뿐 아니라 회사간 시너지 등을 고려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아이리버가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역시 높아지는 모습이다.
아이리버가 협상대상자로 SK텔레콤을 선택할 경우 통신기기와 통신서비스간 융합이 가능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SK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홍콩 사모펀드에 매각된 로엔엔터테인먼트와 지속적인 서비스 교류를 이어가고 있어 초반 세력 확장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에서 50%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음원플랫폼 멜론의 음원플레이어 시장 점유율은 70%에 육박한다. 여기에 아이리버가 15년 넘게 지녀온 기술력과 인프라가 더해질 경우 시장 경쟁력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특히 아이리버는 지난 2012년부터 초 고음질 휴대형 음원 재생기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이리버의 아스텔앤컨 시리즈 가격은 70만원대에 달한다. 이에 걸맞는 고음질 음원 사이트 그루버스 역시 병행하고 있다. 고음질 무손실 음원은 KT뮤직 역시 눈독들이고 있는 시장이다.
데이터 무한 요금제 출시 등으로 디지털 음악 서비스 이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음원시장의 성장성도 쉽게 예측 가능해 로엔엔터 매각 이후 뚜렷한 음원 플랫폼이나 플레이어를 갖고 있지 않은 SK그룹으로서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전일 SK텔레콤이 아남전자와 휴대형 고음질 오디오 제조판매 및 관련 서비스 제공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도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소리바다와 제휴를 맺고 삼성뮤직을 통해 음원을 공급에 나서는 등 시장은 뜨거워지는 모습이다.
◆최고의 선택일까?…우려의 목소리도
이번 SK텔레콤의 아이리버 인수전 예상 시나리오에는 애플이 빠지지 않는다. 아이팟 등의 음원 재생 기기와 아이튠이라는 음원 재생 서비스로 세계 음원 시장에서 막강한 파워를 지닌 애플의 저력을 볼 때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이 신성장 동력으로 미디어 기기를 개발해 음원 콘텐츠 시장을 노려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과점업체인 로엔엔터를 지난해 매각한 SK그룹이 또다시 음원사업에 새롭게 진출할 필요가 있겠냐는 지적 역시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용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멜론 애플리케이션이 탑재돼 있는데다 로엔엔터가 SK텔레콤과 결합한 다양한 할인정책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SK텔레콤과 멜론이 '각자전투'에 들어갈 지는 의문"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아이리버를 사이에 둔 서비스 삼각편대를 짜기에는 아이리버 내부에 음원 플랫폼이 존재하고, 세 그룹이 연결될 경우 아이리버는 음향 기기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합병 여부 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만약 합병할 경우 아이리버가 SK텔레콤의 사업부서 중 하나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이미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통신업체가 유기적인 연결성을 갖고 있는데 통신사 내 전자기기 제조 부서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 지 의문스럽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최대주주로서의 자회사 운영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이 경우 SK텔레콤의 수많은 자회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시장을 흔들만한 파괴력을 찾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인수가 역시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실적이 좋지 않은 보고펀드 입장에서는 최대한 투자금을 빼내 투자손실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지난 2007년 인수가의 절반정도가 제기되고 있지만 시장이 이같은 과열화 양상을 보일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더해 아이리버의 최종 매각액은 높아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한편 보고펀드는 아이리버 입찰 마감 후 다음주 내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한 뒤 다음달까지 매각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이리버의 또다른 인수후보로는 국내 사모펀드(PEF)와 일본계 음향기기업체 등이 거론되고 있다.
[매경닷컴 김용영 기자·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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