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불평등』은 모든 불평등 가운데 가장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시간 불평등을 고착시켜온 자본주의의 역사와 메커니즘을 낱낱이 파헤쳐 비판한 책이다.
“(한국에) 적절한 시간의 정치가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기묘한 징후는, 필요할 경우 사람들이 주당 120시간씩 일하는 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나타났다. 그는 심한 비판을 받았음에도 지난해 3월 기본 40시간에 최대 12시간까지 초과 노동을 허용한 노동시간 체제를 개정해 주당 69시간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 창립자인 정치경제학자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교수는 한국사회의 시간 불평등은 적절한 노동 시간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책에 따르면, 시간은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은 충분한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밥벌이에 인생을 저당잡힌 채 살아간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만으로는 이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스탠딩 교수는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현대의 쾌락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시장 추동 사회에서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시간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시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정치’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후버만큼 극적으로 대중의 신망을 잃은 사람은 미국 대통령사에 드물다. 백악관 입성 당시만 해도 널리 존경받았던 그가 단 몇 년 새 국민의 신망을 완전히 잃고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후버는 1932년 대선에서 미국 선거 역사에서 가장 큰 표 차를 기록하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패했다. 공화당은 그 후 20년 동안 정권을 손에 넣지 못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후버 공황’이라고 불렀다. 판자촌에서 살았던 이들은 자기들 동네를 ‘후버빌’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플래카드를 내걸고 행인들에게 “힘든 시절이 ‘후버’하고 있으니(hoovering) 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리더십 강연을 했던 역사학자 모식 템킨은 후버의 실패를 융통성과 카리스마가 없고, 정치적 기술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데다 위기에 대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글 송경은 매일경제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2호(25.1.7) 기사입니다]
“(한국에) 적절한 시간의 정치가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기묘한 징후는, 필요할 경우 사람들이 주당 120시간씩 일하는 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나타났다. 그는 심한 비판을 받았음에도 지난해 3월 기본 40시간에 최대 12시간까지 초과 노동을 허용한 노동시간 체제를 개정해 주당 69시간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공동 창립자인 정치경제학자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교수는 한국사회의 시간 불평등은 적절한 노동 시간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책에 따르면, 시간은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은 충분한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밥벌이에 인생을 저당잡힌 채 살아간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만으로는 이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스탠딩 교수는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현대의 쾌락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시장 추동 사회에서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시간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시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정치’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모식 탬킨 지음 / 왕수민 옮김 /어크로스 펴냄
대공황이 미국을 강타했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였다. 1929년 대통령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는 발군의 실력을 지닌 공학자에 경제지식도 풍부한 경영자로 명망이 높았다. 공직에 선출된 이력이 전무한데도 대선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그런데 후버만큼 극적으로 대중의 신망을 잃은 사람은 미국 대통령사에 드물다. 백악관 입성 당시만 해도 널리 존경받았던 그가 단 몇 년 새 국민의 신망을 완전히 잃고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후버는 1932년 대선에서 미국 선거 역사에서 가장 큰 표 차를 기록하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패했다. 공화당은 그 후 20년 동안 정권을 손에 넣지 못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후버 공황’이라고 불렀다. 판자촌에서 살았던 이들은 자기들 동네를 ‘후버빌’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플래카드를 내걸고 행인들에게 “힘든 시절이 ‘후버’하고 있으니(hoovering) 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리더십 강연을 했던 역사학자 모식 템킨은 후버의 실패를 융통성과 카리스마가 없고, 정치적 기술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데다 위기에 대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글 송경은 매일경제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2호(25.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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