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양양은 안 멋져?
‘서핑 강습료: 싯가’
강원도 양양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2024년 여름 강원도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600만 명으로 전년보다 14% 이상 늘었지만, 6개 지역구 가운데 양양을 찾는 피서객만 16.9% 줄었습니다. 강릉과 속초처럼 전통적인 바닷가 관광지 뿐 아니라 고성과 동해 지역을 찾는 이들도 늘었는데 유일하게 양양만 관광객 숫자가 줄었는데요. 코로나가 끝나고 해외여행이 늘었다는 이유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입니다. 다른 강원도 바다는 여전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기 때문입니다.‘서핑 강습료: 싯가’
최근 몇 년 간 양양의 관광객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2023년 양양을 찾은 사람은 약 1,500만 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36만 명 이상 늘어난 숫자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양양은 서핑 명소로 알려지면서 특히 여름철에 2030 젊은층이 방문이 크게 늘었고, 주변에 설악산 낙산사와 같은 자연 경관도 있어 힐링과 자연 체험을 원하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도 꽤 많아졌습니다. 양양군의 생활인구는 약 7만 5천명으로 관광객이 늘면서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다니는 기사문 해변도 늘어난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죽도나 인구, 하조대 해변과 달리 언제까지나 시골 어촌 모습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기사문항 어촌뉴딜 300 사업’에 따라 방문자 센터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어촌계 사람들만 오가던 항구 쪽에는 어촌체험센터가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1~2년의 준비 끝에 올해 두 공간 모두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정작 양양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여름 기사문항 주차장은 자리 찾기가 아주 수월했습니다. 해수욕장 시즌에는 어딜 가든 주차 전쟁이었는데, 어렵지 않게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핑 강습료: 싯가’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간 겁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서핑샵들입니다. 여름 한철 장사로 1년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지난 7~8월 방문객 숫자는 반의 반 토막이 났다고 합니다. 20% 줄어든 게 아니라, 20%밖에 오지 않는다. 80%가 줄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임대료는 크게 올랐고, 해변가에 경쟁 서핑샵은 더 늘었는데 손님은 터무니없이 줄었습니다. 1인당 기본 4만 원 이상 하던 강습료가 이젠 ‘싯가’ ‘1만원’이라고 적혀 있는 플랜카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양양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진 이유를 여기저기 물어봤습니다. 양양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 건 ‘나빠진 이미지’였습니다. 2030 젊은 세대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이미지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양양에 혼자 놀러가는 연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물놀이와 해변, 한밤의 클럽 이미지에 더해서 최근에는 마약 관련 키워드도 등장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매스컴에 실리는 안 좋은 사건사고 소식들이 양양을 ‘힙플레이스’보다 ‘위험한 곳’에 가깝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양양 해변에서 캠핑을 하던 중에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근처에서 마약을 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겁니다. 한밤중에 텐트마다 한 번씩 들춰보던 경찰들은 또 다른 신고를 받고 다른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술기운에도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마약이라고? 그동안 아무리 한여름에 사람들이 몰려도 술을 마시고 싸움이 붙는 정도의 사건사고는 여느 해변이라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실제로 해가 뜬 뒤 사람들이 떠난 모래 바닥에서 마약의 흔적을 봤다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가장 뜨겁게 조명받던 지역 중 하나였던 양양이,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새카맣게 타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 제주도 여행이 버킷리스트로 주목받던 것처럼 스키와 스노우보드 씬의 유행이 결국 지났던 것처럼. 양양 열풍도 한 시즌 저물어가는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때가 지나가도 양양의 매력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양양에서 경험했던 좋은 기억들을 쫓아 다시금 사람들의 발걸음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제주도도 스키장도 이전에 가장 유행했던 시기만큼은 아니지만, 진짜 그 장소와 사랑에 빠졌던 이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민지숙 기자 / knulp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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