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현암사)은 일본의 양대 문학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문학상이지만 비교적 갓 데뷔한 소설가들에게 주어지는 신인상의 성격을 지닌다면, '나오키상'은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재미를 보장한 작품에게 주어지는 왕관이라고. 이들 상을 두루 수상한 일본 대표작가의 신작이 연이어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상업적 파괴력을 가진 문학상으로는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이 꼽힌다. 타 문학상과 달리 서점 직원의 투표로만 뽑는 서점대상에 1위를 차지한 소설은 밀리언셀러가 되는 일도 종종 있다. 올초 일본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 두 문학상을 동시에 타 화제를 모은 온다 리쿠(53)의 '천둥과 꿀벌'(현대문학)이 출간됐다. 미스터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환상 문학의 대가로 자리잡은 온다 리쿠가 첫 구상으로부터 12년, 취재 기간 11년을 들여 쓴 소설. 일본에서만 60만부를 돌파했다. 일본 하마마쓰시에서 실제로 3년마다 열리고 있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무대로 인간의 재능과 운명, 음악의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한때 천재 소녀로 불렸지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대를 떠났던 에이덴 아야.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의 엘리트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악기점에서 일하는 가장 다카시마 아카시. 그리고 양봉가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돈 16세 소년 가자마 진. 네 사람의 치열한 경쟁과 우승을 향해가는 과정이 치열하게 다뤄진다. 그가 취재했던 콩쿠르의 우승자가 조성진이었던 걸 계기로 작가는 조성진의 일본 공연 프로그램북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루야마 겐지(72)는 첫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기록을 거머쥔 뒤 이후 어떤 문학상도 거부한 채 일본의 북알프스라 불리는 고향 오오마치로 돌아가 수십 년간 집필에만 매진하고 있는 괴짜 작가다. '파랑새의 밤'(바다출판사)은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보다는 장르적 재미가 더 돋보이는 소설이다. 2000년 초고를 쓴 뒤 14년만에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살다가 평범한 불행은 각오했지만 이렇게까지 박살 날 줄은 몰랐다." 출세를 위해 가족을 버리고 도시로 올라온 주인공은 극단적으로 엉켜버린 가족사로 인해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 버림받고, 아내에게서도 이별을 통보받는다. 당뇨성 망막증 선고까지 받은 그는 실명에 이르면 미련 없이 목숨을 끊겠다며 고향을 찾는다. 퇴직금 현금뭉치를 배낭에 넣고, 양복을 밭두렁에 처박아버리고서. 고향에서는 만난 온갖 자연과 우연들, 그리고 이름 모를 '녀석'과의 조우로 인생 막바지에는 내적 반전이 찾아온다. 자신의 운명과, 고향과, 욕망과 차례로 대결하는 강렬한 서사로 높은 작품성을 평가받았다.
'다리를 건너다'(은행나무)는 2000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악인''분노 등으로 국내에도 팬층을 거느린 요시다 슈이치(49)의 신작 장편으로 처음으로 SF적 요소가 가미되어 화제를 모았다. 선량하고 평범한 세 주인공의 삶을 교차시키는 소설이다. 무사 태평한 삶을 살고 있는 맥주 회사 영업과장 아키라는 집에 수상한 물건이 배달되고, 도의원 남편을 둔 아쓰코는 남편이 사고를 칠까 늘 조바심을 내고, 다큐멘터리 감독 겐이치로는 결혼을 앞둔 연인과의 관계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이들이 불안 속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소설을 친절하게 좇아나간다. 소설 마지막장에서 현재로부터 70년 뒤인 2085년, 인간과 로봇,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는 삼엄하고 질서정연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고민하게 되는 불감의 삶. 연결고리가 없던 세 인물의 삶도 마지막장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그때 바꿨으면 좋았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남기는 메시지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