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은 우이(五·一)라고 부르는 중국 최대 연휴 노동절(勞動節)을 앞두고 원명원(圓明園)을 다녀왔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베이징 외곽에 위치한 청나라 황실 정원을 구경하려는 가족 단위 중국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원명원은 19세기 서구 열강의 청나라 침략 시기에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이 황제의 코앞인 이곳까지 쳐들어와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며 폐허가 됐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원명원은 부서진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인들에겐 치욕의 시기를 보여주는 산증인인 셈이다.
같은 시기 베이징 외곽에 있는 798 예술구(798 藝術區)에서는 나폴레옹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798 예술구는 중국 정부가 지정한 예술 특화구역으로, 젊은 중국인들에게 소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곳이다. 주말을 맞아 이 프랑스인 영웅이자 황제인 나폴레옹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장엔 중국인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 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 주석의 첫 유럽 방문지가 프랑스가 된 것이다. 170여 년 전 청나라 황제를 위협했던 프랑스가 지금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가장 공을 들이는 국가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는 1964년 서방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마크롱 현 대통령 역시 지난해 4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서 소통과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들이 대(對)중국 압박을 강화하는 중에도 프랑스는 중국과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독일은 또 어떠한가. 지난달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을 찾았다. 숄츠 총리는 지난해에 이어서 1년 반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것이다. 특히 그는 이번 방중 전 중국의 쇼츠(shorts) 플랫폼인 틱톡 계정을 스스로 만드는 등 중국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원명원을 짓밟던 19세기에 중국에겐 독일 역시 침략자였다. 독일은 1896년 자국 선교사의 사망 사건을 이유로 칭다오(靑島)를 침략했고, 그 결과 1897년부터 1914년까지 칭다오 지역을 조차(租借/한 나라가 다른 나라 땅의 일부를 빌려서 일정 기간 사용권과 통치권을 행하는 일)했다.
이 시기에 칭다오 곳곳에 지어진 독일식 건물은 이제는 관광지로 변했다. 또, 그 당시 독일인이 운영하던 맥주 공장은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인 칭다오 맥주의 원류가 됐다고 한다.
100여 년 전엔 침략자로 중국 대륙을 호시탐탐 노렸던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가 현재는 서방 국가들의 맹주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속에 중국의 버팀목이 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이유는 자명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의 살림살이를 유지하는 데 중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세계 최고의 소비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뿐 아니라 지금 유럽의 모든 나라는 사정은 별로 좋지 못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은 에너지 위기로 촉발된 저성장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2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GDP가 16.2조 달러, EU가 14.6조 달러로 엇비슷했지만, 2022년에는 미국의 GDP가 EU보다 8.8조 달러나 많았다. 유럽은 미국에 비해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유럽산 제품을 사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됐지만, 구매력을 갖춘 소비 시장으로서는 아직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한마디로 인도는 아직 유럽의 상품을 사들일 단계가 아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는 인도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중국도 이런 점을 잘 알고 또 십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를 뚫기 위해선 유럽과의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중국은 프랑스와 독일을 고리로 삼아 EU의 대(對)중국 디리스킹(de-risking) 정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세세한 과정 과정에서야 이견도 나타나고 또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중국 견제가 심해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중국으로서는 유럽 내에서 발언권이 큰 두 나라가 자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을 것이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치밀한 관계 설정이 핵심이다. 자국 산업 부활의 답을 다시 중국 시장에서 찾으려는 프랑스와 독일을 보고 중국은 뒤돌아 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원명원은 19세기 서구 열강의 청나라 침략 시기에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이 황제의 코앞인 이곳까지 쳐들어와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며 폐허가 됐다. 그로부터 17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원명원은 부서진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인들에겐 치욕의 시기를 보여주는 산증인인 셈이다.
같은 시기 베이징 외곽에 있는 798 예술구(798 藝術區)에서는 나폴레옹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798 예술구는 중국 정부가 지정한 예술 특화구역으로, 젊은 중국인들에게 소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곳이다. 주말을 맞아 이 프랑스인 영웅이자 황제인 나폴레옹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장엔 중국인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나폴레옹 특별전시회를 중국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 사진 = MBN 촬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 주 프랑스 파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 주석의 첫 유럽 방문지가 프랑스가 된 것이다. 170여 년 전 청나라 황제를 위협했던 프랑스가 지금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가장 공을 들이는 국가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프랑스는 1964년 서방국가 중 처음으로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마크롱 현 대통령 역시 지난해 4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서 소통과 협력을 다짐하기도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들이 대(對)중국 압박을 강화하는 중에도 프랑스는 중국과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프랑스 수교 60주년을 맞아 상하이에서는 국제음악회가 열렸다. / 사진 = CCTV 캡쳐
독일은 또 어떠한가. 지난달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을 찾았다. 숄츠 총리는 지난해에 이어서 1년 반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것이다. 특히 그는 이번 방중 전 중국의 쇼츠(shorts) 플랫폼인 틱톡 계정을 스스로 만드는 등 중국인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원명원을 짓밟던 19세기에 중국에겐 독일 역시 침략자였다. 독일은 1896년 자국 선교사의 사망 사건을 이유로 칭다오(靑島)를 침략했고, 그 결과 1897년부터 1914년까지 칭다오 지역을 조차(租借/한 나라가 다른 나라 땅의 일부를 빌려서 일정 기간 사용권과 통치권을 행하는 일)했다.
이 시기에 칭다오 곳곳에 지어진 독일식 건물은 이제는 관광지로 변했다. 또, 그 당시 독일인이 운영하던 맥주 공장은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인 칭다오 맥주의 원류가 됐다고 한다.
칭다오를 조차하던 독일 총독이 머물던 관저. 지금은 관광명소가 됐다. / 사진 = MBN 촬영
100여 년 전엔 침략자로 중국 대륙을 호시탐탐 노렸던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가 현재는 서방 국가들의 맹주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속에 중국의 버팀목이 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이유는 자명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의 살림살이를 유지하는 데 중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세계 최고의 소비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뿐 아니라 지금 유럽의 모든 나라는 사정은 별로 좋지 못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은 에너지 위기로 촉발된 저성장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2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GDP가 16.2조 달러, EU가 14.6조 달러로 엇비슷했지만, 2022년에는 미국의 GDP가 EU보다 8.8조 달러나 많았다. 유럽은 미국에 비해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유럽산 제품을 사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됐지만, 구매력을 갖춘 소비 시장으로서는 아직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한마디로 인도는 아직 유럽의 상품을 사들일 단계가 아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는 인도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칭다오의 맥주박물관. 구(舊) 칭다오 맥주 공장을 개조한 이곳은 독일식 건물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사진 = MBN 촬영
중국도 이런 점을 잘 알고 또 십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를 뚫기 위해선 유럽과의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중국은 프랑스와 독일을 고리로 삼아 EU의 대(對)중국 디리스킹(de-risking) 정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세세한 과정 과정에서야 이견도 나타나고 또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중국 견제가 심해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중국으로서는 유럽 내에서 발언권이 큰 두 나라가 자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은 천군만마나 다름없을 것이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치밀한 관계 설정이 핵심이다. 자국 산업 부활의 답을 다시 중국 시장에서 찾으려는 프랑스와 독일을 보고 중국은 뒤돌아 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