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을 겨냥한 중국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이 13일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BTS를 둘러싼 자국 내 여론 움직임에 대해 이례적으로 지난 12일 정례 기자브리핑에서 "BTS 문제에 관한 보도와 네티즌의 반응을 주목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고 평화를 아끼며 우호를 도모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누리꾼들의 BTS 비판 해프닝에 대해 외신들은 중국의 민족주의적 편협성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했다. 중국 당국이 한·중 우호도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외국에서 비판 여론이 일어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의 입장 표명 이후 13일 현재 웨이보 등 중국 SNS에서 BTS에 대한 비난 여론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상호 우호를 강조한 외교부 발언이 나온 뒤 여론 선동을 한 관영매체들의 공세가 한층 누그러지면서 누리꾼들의 관련 글과 반응도 크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BTS는 지난 7일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밴플리트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에서 '6·25 전쟁'을 언급한 후 이 소식이 일부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곡해되면서 "전쟁 당시 중국의 희생을 무시했다"는 반발을 일으켰다.
중국 입장에서 논란이 된 대목은 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의 수상 소감이었다. 그는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극히 원론적인 발언에도 12일 중국 네티즌들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 비난성 게시물과 댓글을 올렸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국가 존엄과 관련된 사항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며 "BTS는 이전에도 인터뷰에서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식했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오늘부로 '아미'(army BTS팬클럽)에서 탈퇴할 것"이라며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중국군이 수천 명인데 중국 사람으로서 (BTS의 발언은) 화가 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의 격앙된 반응은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이 SNS 게시물을 올리며 여론몰이를 한 영향도 컸다.
특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환구시보는 "수상 소감 중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부분에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지난 12일 보도했다. 또 삼성전자 등 한국 대기업들이 BTS의 중국 내 광고를 내리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 게시물에는 9만40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3880개의 댓글이 달렸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자국군이 참전한 것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애국주의·영웅주의·고난극복의 의미를 담은 '항미원조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BTS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공세도 이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네티즌의 BTS 수상소감 반발 논란 이후 중국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 'BTS 에디션'이 판매를 중지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베이징 현대차와 휠라(FILA)에서도 BTS 관련한 웨이보 게시물이 사라졌다는 글이 게재됐다.
중국 누리꾼들의 움직임에 대해 서방 외신들은 중국 시장의 편협성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했다. 영국 BBC는 RM의 발언이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임에도 BTS가 편향적인 태도로 중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뉴욕타임스(NYT) 역시 악의가 없는 BTS의 발언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광고 스폰서들의 대중국 마케팅에 변화를 가한 점에 대해 과거부터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겪었던 황당한 사례들의 반복 패턴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BTS가 희생양이 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로이터 통신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정치적 지뢰가 시장 곳곳에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 사례라고 평가했다.
연예계 스타를 대상으로 한 중국 누리꾼들의 비판은 예전에도 자주 있었다. 지난달에는 가수 이효리가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예명을 '마오'로 정하겠다고 밝혔다가 유사한 해프닝에 곤욕을 치렀다. 중국 네티즌들이 '마오쩌둥' 초대 국가주석을 비하했다며 그의 SNS를 찾아가 악성 댓글을 쏟아낸 것이다.
2016년에는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자 중국 네티즌이 "대만 독립 세력을 부추긴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소속사 홈페이지는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되고 쯔위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던 중국 화웨이는 즉각 계약을 취소하고 광고를 중단했다.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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