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투기 자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했음에도 월가 헤지펀드 거물들이 앞다퉈 위안화 약세에 베팅하면서 위안화 환율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계 거물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가 최근 위안화 공격 포문을 열면서 불거진 이번 환율전쟁에 월가의 내로라하는 헤지펀드 거물들이 약속이나 한듯 위안화 투매에 가세했다.
헤이먼캐피털매니지먼트 창업주인 카일 배스는 앞으로 3년내 위안화 가치가 40% 급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위안화와 홍콩달러를 공격하기 위한 실탄 마련에 나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자로 전했다. 그가 이끄는 헤이먼캐피털은 주식, 채권, 상품 등 주요 자산을 팔아 만든 뭉칫돈을 위안화와 홍콩달러를 포함한 아시아통화 약세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품에 집어넣었다. 회사 포트폴리오의 85%를 여기에 투자했으니 거의 ‘올인’(다걸기)을 한 셈이다. 배스 창업자는 중국 은행권 부채가 급속히 늘고 있는 점을 지난해 확인한 뒤 위안화 약세에 본격적으로 베팅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실 대출이 통제불능 상황으로 급증하면 은행 건전성이 흔들리고 이때 은행의 자본재확충 차원에서 인민은행이 막대한 양의 위안화를 풀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억만장자 트레이더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헤지펀드 제왕 데이비드 테퍼, 그린라이트캐피털의 데이비스 아인혼도 위안화 공격에 뛰어들었다. 드러켄밀러는 소로스가 지난 90년대초 영국 파운드화 약세 베팅에 나설 때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자크 슈라이버가 이끄는 100억달러 규모 헤지펀드인 포인트스테이트캐피털 역시 위안화 약세에 적극 가세했다. 올들어 1월 중반까지 위안화 약세 투자로 5% 넘는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의 퍼싱스퀘어는 지난주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을 통해 지난해 여름부터 위안화 매도 포지션을 쌓고 있다고 밝혔다. 칼라일 자회사 이머징소버린그룹(ESG)이 운용하는 헤지펀드 넥서스도 공격적인 위안화 약세 베팅에 들어간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경기 하강과 위안화 가치 하락을 예상하는 투기자본들이 위안화를 공매도하거나 위안화의 역내외 환차익을 겨냥한 투자를 벌이면서 중국 당국은 당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의 가파른 약세와 달러의 급격한 유출을 막기 위해 투기자본을 상대로 강력 대응을 천명한 상태다. 올들어 중국 정부는 관영 기관들을 통해 홍콩시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위안화를 사들였다. 과도한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쏟아붓다보니 지난 한해 동안 외환보유액이 5310억달러 급감한 3조3304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최근 인민은행은 외국 기업들의 본국 송금 절차를 면밀히 검토하라고 중국 본토 은행들에 지시했다. 이같은 인민은행 조치로 외국 기업에 대한 본국 이익 송금이 한층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또 인민은행은 역외 은행들이 홍콩에 예치하는 위안화 예금에 대해서도 지급준비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급준비율을 부과하면 일정규모의 위안화 예금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 유출을 막는 효과가 있다. 심지어 블룸버그는 인민은행이 홍콩 소재 중국계 은행들의 위안화 대출을 중단시켰다고 전하기도 했다. 간접적인 자본통제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계속되는 경기 부진은 위안화 방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 제조업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출경기를 살리려면 위안화 약세를 용인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 제조업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1월 제조업 PMI(국가통계국 발표)지수가 49.4로 추락, 3년 5개월래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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