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한국이 넣은 골은 없었다. 상대 자책골에 편승한 1-0 신승이었다. ‘꺾은 것’이 아닌 ‘지켜낸’ 승리였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결과와 내용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고무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한국 축구의 미덕이 한국 축구를 구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7차전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귀중한 승점 3점을 따냈다. 오는 18일 이란과의 최종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자력으로 본선에 나갈 수 있고, 혹여 패하더라도 가능성이 남아있는 유리한 고지를 밟았다.
최강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난 5일 레바논전에서 비기고 오는 바람에 선수들의 부담이 상당했다. 게다 상대는 최근 3연승을 달리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쉬운 대결이 아니었다”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최 감독의 말마따나 집중력이 빛났다. 그 집중력은 승리를 위한 집념에서 나왔다. 절대 물러나서도, 무너져서도 안 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소위 ‘투혼’ ‘투지’ 등으로 대변될 수 있는 선수들의 정신력이 나왔다.
곱지 않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정신력에 기대는 축구’라는 폄하의 시선이 나와도 대응이 마땅치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한국축구의 오랜 미덕인 ‘팀으로서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최근 최강희호가 가장 부족했던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팀’이 부진했음을 상기하면 소득이 컸던 경기다.
수비라인은 모처럼만에 무실점으로 상대를 틀어막았다. 터줏대감인 캡틴 곽태휘는 후반 다리를 절뚝이며 교체 아웃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낯선 멤버들인 김영권 김창수 김치우 모두 부족한 호흡을 집중력으로 만회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수비수들만 수비했던 것도 아니다.
처음으로 가동된 박종우-이명주 중앙미드필더는 경험부족이 걱정됐던 조합이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보였고 냉정함은 떨어졌던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 발 더 뛰겠다는 투지, 끝까지 쫓아가서 막아내겠다는 근성은 돋보였다. A매치 데뷔였던 이명주에게 경기 MVP가 주어졌던 이유기도 하다. 김남일이 있었으면 기대서 움직였을 박종우도 이명주를 이끄느라 더더욱 집중했다. ‘팀’으로서 움직였다.
공격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실전에서 처음으로 가동된 김신욱-손흥민 투톱 조합부터 측면 공격수로 나선 이청용 모두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희생에 방점을 찍은 ‘조연’에 충실하고자 했다. 많이 뛰었다. 특히 이청용은 거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중앙과 측면을 아우르면서 전천후로 활약했다.
후반 19분 투입된 이동국 역시 골을 넣겠다는 ‘공격수’로의 의지보다 승리를 지켜내기 위한 ‘팀의 일원’으로서 집중하는 인상이 강했다. 앞 선에서 상대 공격을 막기 위한 태클이 여러 차례 보였다.
요컨대 팀으로 빛났던 최강희호다. 비록 골을 넣어서 상대를 꺾지는 못했으나 팀의 승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 힘에서 나왔다. 함께 뭉쳐야한다는 집념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정신력은 기술 축구에 반하는, 한국축구의 퇴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종됐던 한국축구의 미덕이 중요한 순간에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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