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읍면동장 시민추천제를 도입하면서 걱정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투표를 통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읍면동장에 지원한 후보자들의 소견을 듣고 적임자를 추천하도록 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시장이 인사권을 포기하면 직원들을 통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이 읍면동장에 뽑히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주민들이 담합해서 특정한 인물을 밀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지난해 인구가 가장 많은 조치원 읍장을, 올해는 이 제도를 더욱 확대하여 신임 6개 읍면동장을 모두 주민들이 추천한 사람으로 선임했다. 이들이 과거 임명직 읍면동장보다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진정한 지방자치가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것은 불신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믿지 못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권한을 이양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유권자들의 수준을 들먹이며 전면적인 자치를 실시하는 게 무리라고 지적한다.
내가 경험한 바, 이러한 불신은 기우에 불과하다. 단체장과 의원들 대부분 실력과 자질을 갖췄고, 특히 주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자치 의식과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 시는 전국 최초로 올해 주민세 전액을 159억원의 자치분권특별회계를 편성하여 읍면동 주민들이 직접 쓰도록 했다.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지만 주민들은 마을 안길 정비, 농로 포장, 배수로정비 등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에서 지역 문화행사, 마을공동체 사업에 이르기까지 마을에 꼭 필요한 사업을 찾아내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알뜰하게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끼리 현안 사업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여 슬기롭게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다.
세종시는 주민들이 도시의 참주인이 되는 시민주권특별자치시를 지향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고 여기서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항을 협의·심의하도록 했다. 마을계획 수립, 마을축제 개최, 예산 협의, 위탁사무 수행 등 폭 넓게 권한을 부여하려 한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 일을 기획·결정하고 예산도 집행토록 하려는 것이다.
현재 세종시는 주요 현안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유명무실했던 각종 위원회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공무원이나 전문가가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방향을 정하면 공무원과 전문가가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법론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행정의 틀을 바꾼 것이다.
시민주권특별자치시를 추진한 지 채 1년도 안됐지만 시민들의 자치 능력과 의지, 열정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마을에 관한 어떤 일을 맡겨도 현명하게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자치 의식과 능력이 성숙했다.
1991년 자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지 30년이 돼간다. '시민주권특별자치시 세종'이 주민들에게 전면적으로 권한을 넘겨주는 담대한 도전의 길을 걷고 있다. 주민들이 진정한 마을의 주인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 성공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성숙한 세종시민의 자치의식과 능력을 믿는다.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