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는 구수한 청국장과 시원한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재래시장이 있고, 지상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거리가 있고, 2층과 3층에는 온갖 빛깔의 악기들이 교항악단처럼 늘어선 악기상가가 있는가 하면, 4층에는 예술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관이 3개나 있고, 9층부터는 중정을 품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최신 주상복합 분양 광고가 아니다. 1968년에 지어진 낙원악기상가 이야기다."-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의 '서울건축읽기' 中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낙원악기상가. 이곳은 1980~1990년대 통기타 열풍이 불던 시절 고(故)김광석 씨 등 국내 유명 뮤지션들이 즐겨 찾던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낙원상가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 때 흉물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다시금 인정받고 있다. 낙원음악상가엔 이곳의 부활을 꿈꾸며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경제학도였지만 음악이 좋아 젊은 시절 밴드 활동에 빠져있었고 결국 이곳을 24년째 지키고 있는 유강호 씨(낙원악기상가번영회장·유일뮤직 대표)다.
"낙원악기상가는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시 뭔가를 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죠. 악기라는 것이 워낙 가격이 비싸다보니 악기를 배우는 것은 누군가에겐 꿈일 수도 있죠.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즐길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유 씨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반려악기 캠페인'을 기획했다. '반려악기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악기를 평생의 친구로 삼게 해주고 연주를 취미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직장인, 시니어들을 위한 무료 강습을 준비했다. 또 안 쓰는 악기를 기부 받아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악기를 전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기획한 프로그램은 매 회 금세 마감됐고 SNS등서 호응이 이어졌다.
"악기 나눔 캠페인엔 지금까지 무려 500여점의 악기 기부가 이어졌습니다. 각 가정과 단체에서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하고 싶다며 꾸준히 연락이 왔죠. 기부 받은 악기들은 최고의 수리 실력을 가진 낙원상가 악기상들의 재능 기부를 거쳐 새 것 같은 악기로 거듭났죠. 이렇게 다시 태어난 악기들은 문화 소외계층 아동들의 음악 활동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 현악기 수리 전문가이자 영국에서 악기 제작과정을 7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최신해 씨(한양악기 대표)도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최 씨뿐 아니라 많은 상가 동료들이 기꺼이 나섰다. 또 직장인의 무료 음악교육을 지원하는 '미생응원 이벤트'와 50·60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축주 강습 이벤트'에도 지원자들이 대거 몰렸다.
"결혼식 때 신부에게 축가를 직접 불러주고 싶다는 예비 신랑부터 태어날 아기를 위해 태교용으로 노래 연습을 하고 싶다는 아빠들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쏟아졌어요. 자녀의 결혼식때 직접 연주를 해주고 싶다는 아버지와 아들·손자와 함께 3대가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할아버지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평생 추억으로 남을 만한 소중한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반려악기 캠페인을 통해 이들의 꿈을 응원할 수 있어 참 뿌듯했죠."
20대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낙원음악상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유강호 씨가 앞으로 꿈꾸는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편히 오고 음악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음악 복합단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낙원음악상가는 악기 업체만 300여 곳이 넘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역사와 전통도 갖추고 있죠. 이제는 단순히 악기를 파는 곳이 아니라 음악을 배우고 연습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휴식처가 될 수 있도록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 때 음악엔 어떤 장벽도 없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윤재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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