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밥은 안 먹고 술만 연거푸 마시더니 결국 눈물을 펑펑 쏟더라고…”
경비원 A모 씨의 눈에는 아직도 손자처럼 살가웠던 ‘젊은이’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던 청년 이모 씨(26)가 법원 퇴거 명령을 받은 뒤 막막한 현실을 비관해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바로 이 씨가 거주하던 임대아파트 6○○동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으로 이 씨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이튿날 현장을 찾아간 취재진에게 이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근무한 지난 4년 간 이곳에서 이 씨를 포함해 무려 5명의 주민이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전했다.
“어떻게 한 동에서 이런 비극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죠?”. 놀란 취재진의 질문에 힘 없이 입을 연 A씨의 눈물섞인 하소연에는 벼랑 끝에 몰린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상황이 분명하게 각인돼 있었다. “휴우…여기서도 (주민이) 떨어지고, 저기서도 떨어지고…” 손가락을 들어 아파트동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잠시 숨을 고른 뒤 A씨는 말을 이어갔다.
“평소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자주 경비실로 놀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어.” A씨는 사망한 이 씨가 가끔씩 술도 나누며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는 사이여서 그의 죽임이 더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수 시간 전인 6월 3일 아침에도 “할아버지 좋아하는 막걸리를 사놨어요”라며 자신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점심시간 때 A씨가 마트에서 즉석 육개장과 소주 한 병을 사서 ‘손주’인 이 씨와 나눠 먹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 씨가 사다 준 밥은 한 숟가락도 뜨지 않고 소주만 마시다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 A씨는 “너무 펑펑 울어서 ‘좀 쉬어라’는 말을 하고 경비실로 다시 내려왔어…”
저녁시간에 먹거리를 사들고 다시 찾았을 때 이씨는 이미 베란다에서 싸늘한 시신이 돼 있었다. “OO야…너 뭐하고 있어?”라며 A씨는 이 씨를 끌어안았지만 이 씨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망한 이 씨는 부친의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생활하며 이곳 임대아파트에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해 아버지가 사망하고 주거 결격사유가 발생해 퇴거명령을 받았다. 공황장애 등으로 근로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이 씨는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퇴거를 막아달라는 도움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그의 안타까운 얘기가 뒤늦게 뉴스로 나오자 정치권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에도 복지 사각지대는 달라진 것이 없다”며 정부의 후속대책을 촉구했다.
손자처럼 대했던 이 씨의 죽음 앞에서 경비원 A씨는 뜻밖에도 지난 4년 간 제2, 제3의 이 씨 같은 사례가 이곳 6○○동에서만 4건이 더 발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쯤인가…초저녁에 경비실에 앉아있는데 밖에서 ‘쿵!’소리가 나 뛰어나가봤더니 OOO호에 사시는 할머니 아들이더라고…” 이 씨가 자살한 뒤 사흘이 지난 6일에는 같은 동에 살던 김모 씨(74)가 방안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변사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파킨슨병과 우울증 등을 앓고 있던 김 씨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외롭게 삶을 마감했다.
“자살에 변사까지 합치면 지난 4년 간 열 건 정도가 될거야…누가 곁에 없으니 그 죽음이 더 안타까울수밖에…” 돈도, 가족도 없는 이들에게 정부와 지자체가 조금만 관심을 쏟아도 벼랑 끝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례는 더욱 줄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그의 표정에 가득했다. “수시로 주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니 너무 괴로워…여기서 일하는 게 점점 싫어지고 있어…”
생의 극단적 순간들을 목도하며 A씨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모습이었다.
이곳 아파트 측에 따르면 거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주로, 장애인 가구도 162세대에 이른다. 아파트 측은 경비원 A씨의 현장 증언과 달리 이 아파트 단지에서 자살·변사 사건이 예외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이 씨 자살 사건도 지난 2010년 이후 처음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밖을 나서며 아파트 담벼락에 걸터앉아 있던 한 주민에게 “이 씨의 자살 사건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주민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몰랐다”며 “그런데 원래 여기는 많이 자살을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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