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총리 후보에서 자진 사퇴한 김용준 인수위원장과 박근혜 당선인이 공식 석상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웬지 서먹하고, 김 위원장의 얼굴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김 위원장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자리였을지 모릅니다.
그것도 그걸 것이 헌정 사상 초대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적도 없거니와 이 문제가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수위 윤창중 대변인이 대독한 김용준위원장의 사퇴 발표문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윤창중 / 인수위 대변인(1월29일)
-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한다. 이 기회에 언론 기관에 한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인사 청문회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
사퇴 발표를 한 날로 시계를 돌려볼까요?
그제 아침 김 위원장은 건강 관리상 매일 하던 수영을 하지 않은 채 평소보다 늦은 오전 9시쯤 인수위 집무실에 출근했습니다.
온종일 두문불출한 채 고심을 거듭하던 김 위원장은 오후 3시 박 당선인을 만나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합니다.
오후 5시 30분쯤 인수위 기자실에는 김용준 위원장 명의의 떡볶이와 귤이 배달됐습니다.
기자들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을까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예상한 기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청문회 전에 대국민 사과나 적극 해명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떡볶이를 먹고 있던 순간 김 위원장은 윤창중 대변인과 사퇴 발표문을 가다듬고 있었고, 저녁 7시 무렵 자진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에게는 어쩌면 평생 가장 길었을 것 같았던 하루가 그렇게 끝났습니다.
김용준 위원장은 왜 자진사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사과나 해명을 통해 돌파할 수는 없었을까요?
김 위원장은 박 당선인에게 지명을 받을 당시만 해도 청문회 통과를 낙관했지만, 두 아들 병역 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분위기가 180도 변했습니다.
병역 면제 의혹은 어찌어찌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특히 70~80년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사들인 부동산에 대해서는 딱히 해명할 도리가 없었다는 후문입니다.
김 위원장 말대로 횡령하거나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 지도층인 판사가 빈번하게 집과 농지를 사고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을 선뜻 이해해 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국민 '법 감정'을 넘을 수 없었던 걸까요?
청문회에서 방어막이 돼 줄 새누리당내 기류가 부정적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수장이 행정부 2인자로 가면서 삼권 분립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결과론적으로 어쩌면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로 부적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왜 박근혜 당선인은 김 위원장을 총리로 지명했을까요?
설마 이런 의혹들을 사전에 알고서도 지명했을 리는 없겠죠.
그렇다면, 박 당선인의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얘기를 차례로 듣겠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1월30일)
- "하자와 문제가 있을 때는 사전에 걸러지는 비공개적으로 (검증)해서 청문회 자체는 보다 긍정적이고 보다 유익이 있는 자리로 국민의 관심아래서 좋은 이야기들이 나눠지는 건설적인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정부 조각에 당도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
▶ 인터뷰 : 문희상 /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1월30일)
- "시작이 반입니다. 첫단추 잘 꿰져야 옷 바로 입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발부터 삐걱거린다면 우리 국민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깜깜이 인사, 밀봉 인사 안됩니다."
윤창중 대변인 임명부터 인수위원 임명, 총리 후보자 지명까지 박 당선인에게 꼬리처럼 따라붙는 말이 '깜깜이 인사' '밀봉 인사'이라는 말입니다.
철통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검증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 위원장에 대해서 정부나 청와대 검증팀 어느 곳에서도 검증 의뢰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박 당선인의 개별 실무팀이 검증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낙마가 인사시스템의 문제라기 보다는 청문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는 듯합니다.
박 당선인은 어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수십년 전 기록까지 샅샅이 다 뒤지고, 가족들 개인사도 낱낱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누가 공직을 맡겠다고 나설까요?
그렇다고 해도, 박 당선인의 말이 기본적인 검증조차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겠죠?
앞으로 남은 장관 후보자들과 청와대 인사까지 수 십명에 달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검증 소홀'이니 '밀봉인사'니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게 많은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두 사람의 분위기는 웬지 서먹하고, 김 위원장의 얼굴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김 위원장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자리였을지 모릅니다.
그것도 그걸 것이 헌정 사상 초대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적도 없거니와 이 문제가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수위 윤창중 대변인이 대독한 김용준위원장의 사퇴 발표문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윤창중 / 인수위 대변인(1월29일)
-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한다. 이 기회에 언론 기관에 한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인사 청문회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
사퇴 발표를 한 날로 시계를 돌려볼까요?
그제 아침 김 위원장은 건강 관리상 매일 하던 수영을 하지 않은 채 평소보다 늦은 오전 9시쯤 인수위 집무실에 출근했습니다.
온종일 두문불출한 채 고심을 거듭하던 김 위원장은 오후 3시 박 당선인을 만나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합니다.
오후 5시 30분쯤 인수위 기자실에는 김용준 위원장 명의의 떡볶이와 귤이 배달됐습니다.
기자들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을까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예상한 기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이 청문회 전에 대국민 사과나 적극 해명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떡볶이를 먹고 있던 순간 김 위원장은 윤창중 대변인과 사퇴 발표문을 가다듬고 있었고, 저녁 7시 무렵 자진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에게는 어쩌면 평생 가장 길었을 것 같았던 하루가 그렇게 끝났습니다.
김용준 위원장은 왜 자진사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사과나 해명을 통해 돌파할 수는 없었을까요?
김 위원장은 박 당선인에게 지명을 받을 당시만 해도 청문회 통과를 낙관했지만, 두 아들 병역 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분위기가 180도 변했습니다.
병역 면제 의혹은 어찌어찌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특히 70~80년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사들인 부동산에 대해서는 딱히 해명할 도리가 없었다는 후문입니다.
김 위원장 말대로 횡령하거나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 지도층인 판사가 빈번하게 집과 농지를 사고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긴 것을 선뜻 이해해 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국민 '법 감정'을 넘을 수 없었던 걸까요?
청문회에서 방어막이 돼 줄 새누리당내 기류가 부정적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수장이 행정부 2인자로 가면서 삼권 분립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결과론적으로 어쩌면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로 부적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왜 박근혜 당선인은 김 위원장을 총리로 지명했을까요?
설마 이런 의혹들을 사전에 알고서도 지명했을 리는 없겠죠.
그렇다면, 박 당선인의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얘기를 차례로 듣겠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1월30일)
- "하자와 문제가 있을 때는 사전에 걸러지는 비공개적으로 (검증)해서 청문회 자체는 보다 긍정적이고 보다 유익이 있는 자리로 국민의 관심아래서 좋은 이야기들이 나눠지는 건설적인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정부 조각에 당도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
▶ 인터뷰 : 문희상 /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1월30일)
- "시작이 반입니다. 첫단추 잘 꿰져야 옷 바로 입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발부터 삐걱거린다면 우리 국민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깜깜이 인사, 밀봉 인사 안됩니다."
윤창중 대변인 임명부터 인수위원 임명, 총리 후보자 지명까지 박 당선인에게 꼬리처럼 따라붙는 말이 '깜깜이 인사' '밀봉 인사'이라는 말입니다.
철통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검증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김 위원장에 대해서 정부나 청와대 검증팀 어느 곳에서도 검증 의뢰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박 당선인의 개별 실무팀이 검증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낙마가 인사시스템의 문제라기 보다는 청문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는 듯합니다.
박 당선인은 어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수십년 전 기록까지 샅샅이 다 뒤지고, 가족들 개인사도 낱낱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누가 공직을 맡겠다고 나설까요?
그렇다고 해도, 박 당선인의 말이 기본적인 검증조차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겠죠?
앞으로 남은 장관 후보자들과 청와대 인사까지 수 십명에 달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검증 소홀'이니 '밀봉인사'니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게 많은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