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건설부동산을 처음 출입할 당시,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갔을 정도로 자주 취재했던 아파트가 있습니다. ‘강남재건축 1번지’라 불리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함께 재건축 아파트의 쌍벽을 이루던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입니다.
방송이라는 매체 특성상 다른 기자들보다 더 자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동산 시세나 대책과 관련한 현장의 반응 기사를 쓸 때 공인중개사 인터뷰는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핫한 강남 재건축에 5,040세대 대단지로 가격이 시장 상황을 가장 빠르게 반영해 움직였고, 중개사들 역시 방송 인터뷰에 부정적이지 않아 취재가 용이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업시행인가 전이라 언제 재건축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올해 11월말에 드디어 새 아파트를 다 짓고 입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74개동 6,702가구로 강남구에서 단일 단지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모처럼 생각이 나서 과거 취재차 자주 들렀던 공인중개사에게 안부도 물을 겸 시황이 어떤지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다 지어져서 입주에 들어갈 때 통상 전세를 구하기 시작하는 입주 2~3개월 전의 전세가격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입주 시작까지 가격이 내려갑니다. 전세를 놓는 집주인들 상당수는 임차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받아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데, 입주지정 기간이 끝나면 연체료 등을 부담해야 해 시간이 지날수록 심적 부담이 커져 전세가를 내리는 겁니다. 그러다 입주지정기간이 막바지로 가면 이런 저가 물량이 해소되면서 전세가격이 다시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이클입니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께 들은 입주 시황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첫 물건 거래 이후에도 전세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겁니다. 전용 59㎡ 전세가격 기준 집주인이 대출을 남기는 물건은 8억 원대, 선순위 대출을 안 남기는 물건은 9억 원대까지 높아졌다고 합니다.
한국부동산원이 8월 둘째 주(8월 14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 전세가격이 한 주 전보다 0.0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주 전 조사 때 0.03%보다 상승폭이 커졌습니다. 특히, 서울은 0.11% 오르면서 6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을 통해 하반기 역전세난 심화를 우려했지만, 적어도 아파트 전세시장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시도별 아파트 전세가격지수 변동률. 자료: 한국부동산원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걸까요? 전세가는 내려갔지만 빌라는 돈 떼일까 무섭고. 대출 규제 풀리고 금리도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아가니 아파트로 수요가 쏠리는 겁니다. 문제는 이후 매머드급 대단지 입주는 1년도 넘게 남았다는 겁니다. 6,702세대 매머드 단지가 입주에 들어가도 전세가격이 오르는데, 부동산 빅데이터업체인 ‘아실’ 통계에 따르면 내년 서울 민간아파트 입주물량은 채 1만 가구가 되지 않습니다.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하는 12,032세대 올림픽파크프레온은 25년 1월에야 입주에 들어갑니다. 게다가 공사비 급등으로 착공 물량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통상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은 연립다세대로 번지는 경향이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졌던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는 다소 줄어들겠지만, 더 무서운 전세난이 서민들을 엄습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서울 아파트 연간 입주 물량.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가 24년 통계에 반영돼 있어 이를 제외하면 24년 물량은 8,154가구에 불과하다. 출처: 아실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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