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간염을 발견한 공로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마이클 호턴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70)는 자신의 수상 소식에도 웃을 수 없었다. 노벨상 수상은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이지만 그는 수상의 기쁨 보다는 자신이 혼자 이 상을 받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 호턴 교수는 지난 1989년 C형 간염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처음 규명했다. 당시 그는 바이러스학자인 주구이린(朱桂霖)· 조지 쿠오 박사와 한 팀을 이뤄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호턴 박사는 발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턴 박사는 네이처 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노벨상 수상은 매우 좋은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연구팀 전체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노벨상위원회는 각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3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호턴 박사는 이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두 동료도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로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해 왔다. 호턴 박사는 이전에도 노벨의학상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가드너 국제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지만 동료들과 함께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절한 바 있다. 당시 호턴 박사는 주구이린·조지 쿠오 박사를 수상자에 넣어달라고 가드너 재단에 요청했으나 재단측에서 이를 거부하자 항의의 표시로 상과 7만5000달러(8500만원) 상당의 상금을 모두 거절했다.
주구이린 박사는 C형간염 바이러스 존재를 규명하기 5년 전인 지난 1984년 호턴 박사의 연구실에 합류했다.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던 백신 연구 기업 키론사의 연구원이었다. 키론은 지난 2006년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에 인수된 연구중심 회사다. 호턴 박사팀은 'A형 간염도 아니고 B형 간염도 아닌' 의문의 간염 바이러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의 혈액을 확보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유전자 분석 자체가 쉽지 않아 수년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난관에 봉착한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같은 회사 옆 실험실에 있던 조지 쿠오 박사였다. 쿠오 박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샘플에서 유전물질(RNA)의 일부를 추출해 세균에 주입해 분석이 쉽도록 증폭작업을 거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곁에서 실험 설계 과정을 돕던 쿠오 박사는 1986년부터 호턴 박사 연구팀에 본격 합류하게 됐다. 결국 이들은 1989년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새 리보핵산(RNA) 바이러스가 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1989년 저명한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개제됐다.
주구이린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휴일없이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연구에 몰두해 있던 시기"라며 "바이러스 검사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매일같이 감염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국가기관이 아닌 일반 기업에 근무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 진척이 없을 경우 언제든 회사가 프로젝트를 접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는 어려운 시기였고 일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쿠오 박사는 노벨의학상 발표에 대해 "대부분의 연구가 팀 기반으로 이뤄지는 과학 세계에서 수상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구식"이라고 언급했다.하지만 그는 "(자신을 포함해 모든 과학자들에게) 연구의 목표가 노벨상은 아니다"라며 "내 연구가 전 세계에 도움이 되고 실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데서 꿈의 동기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수상자인 호튼 박사는 "노벨상 수상이 C형 간염 발견 연구성과를 오히려 망친 것 같다"며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이 분야의 발견에 기여한 과학자들이 최소 6명 이상이며, 이 뛰어난 사람들은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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