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면세점에서 세금을 바로 환급해주는 ‘즉시 환급제’가 올 초부터 시행됐지만 정작 백화점과 마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은 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환급에 필요한 단말기 교체나 여권 정보 확인을 위한 정보 공유, 내부적인 회계기준 재설정 문제 등이 사후면세점에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도 도입만 졸속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후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부가가치세 등 모든 세금이 포함된 값을 내고 물건을 산 뒤 출국 전 공항에서 세금을 환급받는 상점을 말한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지난 1일부터 도입한 즉시 환급제도를 통해 사후면세점에서 건당 20만원 미만의 물품을 구입하면 즉시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연말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지금까지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후면세점에서 세금을 포함한 가격으로 물건을 산 뒤 출국하기 전 공항에서 환급 절차를 한꺼번에 밟아 불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정작 바뀐 법과 달리 외국인 관광객들은 현재 사후면세점으로 운영 중인 롯데·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서 즉시 환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가가치세를 뺀 물품의 가격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단말기가 사후면세점에 전혀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계산대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로 환급해주려면 부가가치세가 빠진 금액이 찍히는 단말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설치 전”이라며 “설치를 하지 못한 이유는 이와 관련해 환급대행사나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얘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환급대행사를 통해 사후면세 업무를 보고 있는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즉시 환급제를 도입하려면 환급대행사나 정부와의 시스템 연결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내부적인 회계 시스템을 즉시 환급제 도입에 맞춰 변경해야 하는 문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즉시 환급제 도입에 따른 단말기 교체를 비롯해 내부 회계기준 변경을 위한 시스템 작업에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백화점과 마트 그 자리에서 환급을 받으려면 외국인 관광객의 여권 정보를 반드시 확인해야하는데 관련 보안 시스템 역시 마련돼 있지 않아 즉시 환급제가 ‘즉각’ 도입되지 않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사실 즉시 환급제를 실시하기 위한 단말기 설치 비용은 중국인 고객을 잡으려는 백화점 입장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환급에 필요한 여권 정보 확인 과정 중에 개인 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계산대에서 돈을 직접 주고받다보니 각종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와 관련된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즉시 환급제 도입으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 물건 계산을 위한 대기열이 길어진다거나, 관련 계산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새로 충원하는 일을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사후면세점에서 즉시 환급제 도입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고 또 경쟁사 어느 한 곳에서라도 즉시 환급제를 운영하게 되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잇따라 운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분명 업계 입장에서 즉시 환급제 도입은 필수 아닌 필수인 상황”이라며 “하지만 업계 현실을 간과한 채 시행령만 우선 개정돼 제도 변화에 현실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내 관광 서비스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즉시 환급제는 서둘러 도입해야 할 제도”라며 “정부 측에서 관련 시스템 구축은 다 끝난 상태로 민간 부문에서 완벽한 시스템 적용을 위해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환급 대행업체들과 환급 시스템 구축에 관해 논의한 후 즉시 환급제 도입을 업계에 더욱 독려한다는 방침이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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