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사극 열풍이다. 지상파 3사가 모두 사극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방송을 시작한 유승호·김소현 주연의 MBC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에 이어 29일 주원·오연서 주연의 SBS '엽기적인 그녀', 31일 연우진·박민영 주연의 KBS 2TV '7일의 왕비'가 방영을 시작했다. 여기에 7월 임시완·윤아를 주연으로 한 MBC의 신작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까지 가세한다.
뚜껑을 열어보니 세 작품 모두 거죽은 사극이지만 알맹이는 '로맨스'다. 철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하는 비운의 왕세자(유승호)와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한가은(김소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군주'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자 '신데렐라 스토리'다. 중종(연우진)의 부인이었던 단경왕후 신씨(박민영)가 알고보니 연산군(이동건)의 사랑도 받았다는 '7일의 왕비'와 '왕은 사랑한다'의 왕(임시완)과 그 왕의 호위무사(홍종현) 둘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여인(윤아)이란 구도는 전형적인 남녀 삼각관계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는 "사실상 드라마의 핵심시청자는 여성이고 그들이 가장 열광하는 주제는 '사랑'이다"며 "현대물은 이제 소재면에서 신선함이 떨어지니 시대만 과거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극 로맨스는 수차례 증명된 흥행공식이다. '공주의 남자'(2011)는 24.9%, '해를 품은 달'(2012)은 시청률 42.2%, '구르미 그린 달빛'(2016)은 23%를 기록하며 종전의 히트를 쳤다. 하지만, 이번 세 작품의 성적표는 기대이하다.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군주'가 11%, '엽기적인 그녀'가 8%, '7일의 왕비'는 6%에 그쳤다.(6월 둘째주 기준).
이들 드라마의 공통점은 아이돌급 젊은 남녀 주인공을 내세워 화려한 볼거리와 트렌디한 퓨전사극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극이라는 배경은 그야말로 들러리에 불과하다. 한복과 전통 가옥 등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정치싸움을 곁들여 약간의 긴박함을 더할 뿐 역사적 고증이나 조선시대 문화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해품달'과 '구르미 그린 달빛' 성공 이후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며 "퓨전 사극을 넘어 트렌디 사극이라 봐야 할 것 같다. 옷과 배경만 시대극이지 대사톤이나 대사와 상황은 현대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전지현과 차태연 주연의 동명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엽기적인 그녀'의 혜명공주(오연서)는 조선시대 공주임에도 전지현의 현대판 캐릭터와 연기나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라시(찌라시)', '섬남섬녀(썸남썸녀)' 등 현대의 문화와 유행어를 조선시대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냈지만 그러다보니 조선시대란 특수성을 담고 있는 지점이 한복말고는 없다. '7일의 왕비'의 경우, 중종과 연산군이 단경왕후 신씨를 동시에 사랑했다는 설정은 판타지에 가깝다.
성균관스캔들이나 구름에 그린 달빛같은 로맨스 퓨전사극이 드물때만해도 젊은 여성층의 지지를 얻으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내 진부해져버린것이다.
동시간대의 방영중인 tvN과 OCN 등 케이블 방송사는 외계인(써클), 듀얼(복제인간) 등을 다루며 소재와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데 반해 지상파는 과거에 안주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드라마 제작 PD는 "케이블이 '도깨비'같이 사극이라도 한국형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로 성공을 거두는 와중에 지상파가 도전보다는 이전의 흥행 공식을 답습하다보니 시청률도 잘 안나오는 거 아니겠나."고 평했다.
장르물로 재미를 보지 못한 지상파의 어쩔 수 없는 회귀라는 설명도 나온다. MBC는 올 초 '미씽나인'이라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갇힌 9명의 이야기를 다루며 한국판 '로스트'(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을 소재로 한 미국드라마)라며 기대를 모았으나 시청률은 5%대에 그친 바 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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