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잘 된 영화들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기 마련이다. 특별함은 소문으로 퍼진다. 인구 절반이 모바일을 통해 정보를 얻는 한국에서 SNS 입소문의 위력은 거대하다. 연간 개봉작만 1200여 편, 사흘에 한번 꼴로 새 작품이 올라오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봉 첫주 SNS 평가의 향방이 그 영화의 흥행을 결판 짓는다”는 업계의 속설은 과장이 아니었다.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무장한 대작들 사이에서 까다로운 관객들의 마음을 훔쳐 SNS 덕을 톡톡히 본 영화들이 많았다. 국내 최대 극장체인 CGV에서 매일경제에 제공한 빅데이터 자료를 토대로 2016년 SNS에 울고 웃은 국내 영화시장을 분석했다.
◆모바일 버즈량 많고 길수록 흥행 ‘뒷심’ 발휘
SNS 입소문의 지표는 ‘버즈량(특정 대상이 언급되는 횟수)’이다. 영화가 얼마나 많이, 또 오래 언급되는지 여부가 흥행에 직결되는 것이다. 계절별로 꼽아본 SNS상 화제의 영화 4편(‘주토피아’‘나의 소녀시대’‘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럭키’) 모두 버즈량 면에서 동시기 개봉작들을 압도했다.
지난 2월 17일 개봉해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470만명을 동원한 ‘주토피아’는 개봉 후 한달 간 공개된 페이스북·인스타그램·블로그 계정에서 9만5000번 가량 언급되며 같은 시기 상영작 ‘데드풀’‘동주’보다 9~10배 높은 버즈량을 보였다. 또 개봉 전까지 ‘데드풀’‘동주’ 등과 유사한 일별 버즈량을 보이던 이 영화는 개봉 나흘 차에 경쟁작들보다 평균 6배 자주 언급됐으며 이런 추세는 이후 보름간 지속됐다. 실제로 개봉일 3만5000명이던 관객수는 나흘 뒤 첫 주말을 기점으로 일별 관객수가 7~8만명으로 두배 가량 뛰었다. 입소문이 관객몰이에 영향을 줬으리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만에서 온 소규모 멜로영화 ‘나의 소녀시대(5월12일 개봉)’ 역시 인상적인 버즈량을 보이며 올 한해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2위(40만명)를 차지했다. 같은 날 개봉한 화제작 ‘곡성’에 비해 관객수는 6%에 불과했지만 SNS 버즈량 면에선 42%에 달했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곡성’이 개봉 1주일 후부터 버즈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과 달리 ‘나의 소녀시대’의 경우 한달 가량 꾸준히 상승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꿀잼’‘설레다’‘유해진’…SNS키워드가 인기 견인
SNS상에서 집중적으로 언급된 내용은 해당 영화의 인기비결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달 12일 개봉 이래 한달간 경쟁작들의 10배 가량 버즈량을 내며 이례적인 7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둔 중소규모 코미디물 ‘럭키’가 대표적이다. 언급된 관련 키워드 중 2위와 두배의 격차를 보이며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어는 바로 주연배우 ‘유해진’의 이름이었다. CGV관계자는 “최근 TV예능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유해진의 연기를 두고 ‘좋다’‘웃기다’‘재미’ 등 긍정적 연관어가 압도적으로 등장하며 흥행을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토피아’와 관련해 SNS서 가장 자주 언급된 말은 ‘더빙’이었으며 ‘보세요’‘재미’‘편견’‘존잼(무척 재미있다는 뜻의 속된 표현)’ 등의 키워드가 잇따라 추출됐다. 우리말 더빙 버전에 대한 호평이 재관람객 증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복고적 분위기가 강했던 정통멜로 ‘나의 소녀시대’는 ‘좋다’‘설레다’‘유치’‘사랑’ 등의 키워드가 나란히 1~4위로 언급됐다. 9월 28일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판타지물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스타감독 ‘팀 버튼’의 이름과 ‘예쁘다’‘특별’ 등의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팀 버튼 작품 특유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지속적잊 입소문에 일조한 모양새다.
분석을 담당한 CGV관계자는 “올해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보인 영화들의 흥행 원동력이 뭘까 고민하다 SNS의 영향력에 눈길을 주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버즈량의 지속성과 내용 면에서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국내 영화시장에서 SNS 입소문의 파급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전망인 만큼, 꾸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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