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기록 경신 경쟁보다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국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가을경매 도록을 받아 본 미술 애호가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블루칩인 김환기와 천경자, 박서보 작품을 도록 커버 이미지로 내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각각 27일과 28일 181점(추정가 100억원)과 203점(140억원) 미술품을 가을 메이저 경매에 출품한다.
출품작 면면을 살펴보면 박서보 이우환 윤형근 정성화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군이 최명영, 이강소, 김기린, 이동엽까지 넓어졌고 하인두, 김창열, 윤명로 등 추상미술 작가들도 대거 등장해 추상미술 강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 독자적인 색채미술의 대가였으나 45살에 요절한 비운의 여성화가 최욱경과 민중미술 계열 중 서정적인 작품으로 인기를 끄는 ‘제주 화가’ 강요배가 다크호스로 등장해 경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달 27일 포문을 여는 서울옥션의 야심작은 이중섭의 1954~1955년작 ‘호박꽃’이다. 가로 98㎝, 세로 62㎝ 크기의 대작인 이 작품은 얼키설키 엉킨 호박과 덩굴 등이 화려한 노란색으로 표현됐다. 일본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굴곡진 인생의 불안이 투사된 작품으로 14억원에 경매가 시작된다.
박수근 화백의 1964년작 ‘귀로’(15.5x10.8cm) 역시 국민화가로서의 시대정신을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이고 동생 손을 잡고 가는 소녀를 그린 이 작품은 인물 옆에 시원하게 뻗은 고목나무를 그림으로써 가난과 고뇌에도 좌절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단단한 의지와 정신을 보여준다. 1965년 10월 중앙공보관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화백 유작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추정가는 3억5000만원에서 5억원 사이. 표지 이미지로 선정된 김환기의 1970년작 유화 ‘15-VII-70 #181’(73.5x36.3cm)은 추정가 6억에서 9억원에 나왔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이번 경매서는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도상봉이라는 걸출한 근대 거장들과 김환기, 조각가 최만린과 전뢰진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롭게 구성했다”고 밝혔다.
케이옥션 역시 김환기와 천경자를 내세운 안정적인 라인업을 보여준다. 추정가 10억원에 나온 김환기의 ‘새벽(Dawn)#3’은 작가가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출품하기 위해 준비한 열네점 중 한 점으로 알려져 있다. 점과 선, 면으로 화면을 분할한 작가의 빼어난 구성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지난해 작고했으나 ‘미인도’ 위작 스캔들로 관심의 중심에 선 천경자 화백(1924-2015)의 1993년작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 3’도 추정가 5억8000만~9억원에 출품된다.
박서보의 1975년작 100호 ‘묘법 No.3-75’는 추정가 10억~15억에 출품된다. 경합이 치열할 경우 작가 최고가를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고미술 분야에서도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옥중 유묵과 백범 김구의 휘호가 출품돼 관심을 끈다. 서른한 살 안중근이 차디찬 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에 쓴 서예 ‘행서족자’는 명심보감 훈자편에 담긴 글귀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는 뜻깊은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옥중 유묵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데다 약지 자른 왼손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감동을 준다.
백범 김구의 1947년작 서예 ‘我爲人人 人人爲我(아위인인 인인위아)’ 역시 “내가 남을 위한 사람이 되면, 사람들도 나를 위할 것”이라는 의미 있는 글씨가 쓰여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지도의 두 정수인 ‘동여총도’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출품됐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단색화 열풍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이어질 지, 또 다른 미술시장의 축으로 등장한 민중미술 작가들의 선전, 최욱경과 추상미술 작가군의 재조명이 이번 가을 경매 관전포인트”라고 분석했다. 서울옥션 경매는 27일 오후 4시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 02)395-0330, 케이옥션 경매는 28일 오후 5시 서울 신사동 아트타워(02)3479-8888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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