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자국을 탈출하려는 러시아인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강압적 통치를 펼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국경 폐쇄까지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혹한 제재와 심화되는 고립과 함께 푸틴 대통령의 억압적인 통치가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을 자국에서 몰아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고 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언론인, 운동가, 예술인과 함께 전문직 종사자 등 생활 형편이 넉넉한 러시아인들이 주로 자국을 떠나고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이웃국가로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핀란드 국경수비대에 따르면 지난 2월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입국한 인원은 약 4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의 2만7000명 보다 1.6배 가량 늘었다.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핀란드행 버스와 기차표가 매진된 가운데 핀란드 국영 철도 운영사인 VR 측은 헬싱키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열차를 증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WSJ는 러시아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거나 입국 요건을 완화한 터키, 조지아, 아르메니아로도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자국을 떠나는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푸틴 대통령을 오랫동안 비판해온 정치적 반대자들이 많다. 최근 서방의 가혹한 경제 제제에 이어 러시아 의회가 거짓 정보로 자국 군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에 최대 징역 15년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기폭제가 됐다. 여기에 푸틴이 계엄령을 선포해 표현의 자유를 더욱 옥죄고 국경 폐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자 러시아를 떠나려는 이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상태다. 이스라엘에 정착할 계획인 막심 쿠비킨 씨는 WSJ에 "푸틴은 제정신이 아니며, 이웃을 침략할 것이라는 점은 여러해 동안 알고 있었다"며 "나는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자국을 탈출한 러시아인들이 타국에 정착하더라도 서방의 제재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신용카드사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러시아에서 영업 정지를 선언한데 따라 그들의 신용카드를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WSJ는 "카드사들의 움직임은 러시아를 떠난 이들의 자금을 질식시킬 것"이라며 "이 조치는 푸틴 대통령 측근보다, 주로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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