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상징' 뉴욕 증시의 6대 대장주 시가 총액이 사흘만에 1조 달러(약 1190조 3000억원) 사라졌다. '7월 거품 붕괴설'에도 불구하고 기술주를 중심으로 거침없는 상승세를 달려온 뉴욕 증시가 별다른 돌발 악재 없이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그으면서 시장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심상치 않은 하락세가 이어지자 투자자들은 불안에 빠졌고 월스트리트 증권가의 전문가들이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고있지만 명확한 변수가 잡히지 않는 모양새다.
8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대표 주가 지수는 4주 만에 최저 수준으로 밀려났다. 이날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주가지수(-4.11%)와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지수(-2.78%),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2.25%)가 일제히 급락한 결과다. 특히 3거래일 동안 10% 넘게 빠진 나스닥 지수는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시장 공포 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8일 기준 2.31%오른 31.46포인트를 기록했다.
특히 3거래일 연속 기술주 폭락 사태로 '6대 대장주' 시총은 애플의 내년 매출 전망치에 맞먹는 1조 달러가 증발했다. 애플은 총 325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는 총 2190억 달러, 아마존은 총 1910억 달러,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총 1350억 달러, 테슬라는 총 1090억 달러, 페이스북은 총 890억 달러가 사라졌다. 특히 테슬라는 8일 하루에만 주가가 21.06% 폭락해 지난 2010년 나스닥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최악의 날을 보냈다. 이날 하루에만 시총 800억 달러가 날아갔는데 이는 제네럴 모터스(GM)와 포드 시총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다.
심상치 않은 하락세 속에서 월가 전문가들의 상황 판단과 전망은 서로 엇갈리는 모양새다. 대부분은 그간 기술주를 중심으로 폭등했던 주가가 건전한 수준으로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분석을 하면서 당분간 어느 정도 하락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간 폭등세가 2000년 봄 뉴욕증시를 휩쓴 '닷컴 버블(거품)' 붕괴를 넘어 수십년 전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와 유사하다면서 추가 폭락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우선, '테슬라 발 뉴욕증시 급락'에 방점을 두는 전문가도 있다. 노무라 증권의 찰리 매켈리거트 분석가는 8일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메모에서 "테슬라가 S&P500 지수에 편입되지 않은 것은 나스닥/기술주 모멘텀에 매우 특이하고 새로운 고통 포인트로 작용했다"고 언급했다. 뉴욕증시 급락은 '전세계 자동차 업계 시가총액 1위'를 찍으며 투자 돌풍 한가운데 선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 주가 폭락을 따라 불거졌는데, 직접적인 인과 관계는 없지만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애플과 테슬라의 분할된 주식이 첫 거래된 지난 8월 31일, 테슬라 주가는 하루 새 12.57% 폭등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9월 1일 테슬라가 50억 달러 규모 유상증자에 나섰다는 소식이 나오고 연달아 다음 날 '외부 최대 투자자'인 영국 투자사 베일리기포드가 포트폴리오 비중 조정을 이유로 테슬라 주식을 대거 매도했다고 밝힌 것을 기점으로 출렁였다. 이어 지난 4일 테슬라가 S&P500 지수 편입에도 실패했다는 소식이 증시 마감 이후 전해진 결과 주말·미국 노동절 연휴 이후 증시가 개장한 8일 테슬라 주가는 21.06%폭락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뉴욕증시 급락세가 '건전한 조정 과정'이라고 진단하면서 당분간 하락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인베스코의 트리스티나 후퍼 글로벌 시장 수석 전략가는 이날 CNBC 이메일 인터뷰에서 "잘못된 것을 '수정'(correction)하는 과정이 아니라 건전한 조정으로서 그간의 급등세를 '소화'(digestion)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서 "지난 3월 이후 나스닥 지수가 저점 대비 60%급등한 해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고 언급했다. 아비바 인베스터의 수잔 슈미트 분석가는 "보통 연휴 다음날에는 거래가 몰리면서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노동절 연휴 다음날인 8일에 매도세가 집중되면서 주가 하락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해 급락보다는 조정에 무게를 실었다. 프린시펄 글로벌의 시마 샤 수석 전략가 역시 "기술주 모멘텀이 완화되는 순환 주기에 접어든 것"이라면서 "단계적 정상화가 이뤄지면서 사람들이 보다 정상적인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기술 의존도가 줄어든 것이 주가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술주 거품 붕괴보다는 상승 모멘텀 약화에 따른 조정 장세라는 분석이다.
반면 뉴욕증시 급락세가 '버블 붕괴 과정'이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8일 마켓워치에 따르면 워싱턴피크의 앤드류 펄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테슬라는 시장 불안정을 가져온 과잉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테슬라를 비롯해 뉴욕증시 주요 종목들이 대부분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주당순자산)이 지나치게 높은 데 과거에 이런 적은 1980년대 후반 도쿄증시나 2000년 3월 뉴욕증시(닷컴 버블) 정도를 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가 침체되고 닷컴 버블이 붕괴된 것처럼 코로나19 사태 이후 뉴욕증시 거품이 붕괴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거품은 터질 때까지 계속 불어나기 때문에 한번 터지고 나면 충격이 크고 여파도 복잡하다"고 경고했다.
'비트코인 투자사' 갤럭시디지털의 마이클 노보그라츠 회장 역시 이번 뉴욕 증시 급락세를 두고 버블 붕괴를 언급했다. 노보그라츠 회장은 "그동안 우리는 광적인 투기 속에 있었고 거품이 터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시장은 '고점 매도'이고 '저점 매수'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나스닥과 테슬라는 그간 너무 높았다"면서 "아직 강세장이 끝난 것이 아니다. 다만 강세장은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경고했다.
명확한 변수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뉴욕 증시의 '고래'(짧은 시간에 주가를 움직이는 대형 투자자)로 등극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콜옵션 거래에 눈길을 두고 있다.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보기술(IT) 업계 큰 손인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올해 봄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및 테슬라 등 대형 기술주 관련 콜 옵션을 40억 달러(약 4조 7500억원) 규모에 사들였으며 이것이 최근 나스닥 지수 폭등 배경일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반 주식 거래를 기준으로 하면 500억달러(약 59조 4700억원) 규모를 매입한 파급력을 가지는 것으로 특정 콜 옵션에 대한 수요가 단기에 급증하면 시장에서는 이것이 강세장 신호로 받아들여져 매수세가 따라붙는다.
다만 9일 오전 아시아 선물시장에서는 나스닥 지수 선물이 0.50%이상 상승 중이다. 이때문에 투자자들은 9일 뉴욕증시가 상승 반전할 지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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