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 팬데믹 대응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지난달 말 캐나다 매체 '더 글로브 앤 메일'에 현지 유력 의학계 인사가 쓴 기고문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피터 싱어 토론토 의대 교수로, 캐나다왕립학회 정회원이다.
그런데 기고문 내용을 보면 이번 팬데믹에서 WHO 대응에 낙제점을 주고 있는 세계인들의 평가와 달리 비정상적인 찬양 일색이어서 눈길을 끈다.
주지하듯 WHO는 작년 말 시작된 중국발 우한폐렴의 강력한 전염성을 국제사회에 신속하게 알리지 못한 책임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WHO를 이끄는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에 대한 비판도 크다.
그는 올해 1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식회동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난 뒤인 1월 30일에서야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해 지탄을 받았다.
시진핑 주석과 만남을 앞두고 WHO가 눈치보기를 하다가 비상사태 선포의 타이밍을 늦췄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싱어 박사의 기고문 내용은 그러나 이 모든 평가를 180도 다르게 해석했다.
매일경제가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문제의 찬양성 기고를 올린 피터 싱어 박사(t우측 사진)는 현재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의 특별자문역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
그는 "WHO는 그간 시시각각 도움이 필요한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전제했다.그러면서 "이 모든 노력에는 세계 149개국에 WHO가 신속하게 전염병 위험성을 알린 부분이 포함된다"고 평가했다.
뒤이어 말많고 탈많은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의 리더십 문제를 건드렸다. 그런데 이 역시 비판이 아닌 찬양 중심이었다.
싱어 박사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그간 조용하고 엄중한 자세로(a calm and principled manner) 국제사회의 노력을 이끌어왔다"고 평가했다.
그 근거로 싱어 박사는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1의 공공의 적으로 칭하고, 그간 세계에 기회의 창이 좁아지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의 유력 의학계 인사가 이처럼 세계 시민의 정서와 상반된 무리한 찬양성 기고를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경제 취재 결과 답은 피터 싱어 박사의 이력에 있었다.
WHO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뜻밖에도 그는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을 지원하는 현직 특별자문역(Special Advisor to the Director-General)이었다.
싱어 박사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서도 대외 직함이 'WHO 사무총장 특별자문역'을 표기돼 있었다.
그의 계정을 보면 2017년 5월 테드로스 사무총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싱어 박사는 해당 사진에 "나는 테드로스 박사가 역대 최고의 WHO 사무총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덕담을 붙였다.
당시 시점은 테드로스 사무총장이 WHO 사무총장 선거에서 중국의 지지를 받으며 아프리카 출신이자 의사 면허가 없는 최초의 WHO 사무총장으로 당선된 즈음이었다.
자신의 특별자문역이 캐나다 매체에 낸 WHO 찬양성 기고문을 테드로스 사무총장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것도 문제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해당 기고문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와 함께 "WHO여서 자랑스럽다(#Proud to be WHO)"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한편 그는 자신과 WHO를 둘러싼 세계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최근 대언론 화상브리핑에서 "세계가 코로나19에 대한 WHO의 당부를 주의 깊게 들었어야 했다"며 오히려 각국 정부에 책임론을 돌려 논란을 일으켰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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