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30분이었던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15분간이나 정상회담을 갖고서도 부족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강렬했던 것일까. 이달 초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식 양자회담을 마치고 불과 몇 시간 뒤 한 번 더 회동해 사적인 비공개 대화를 가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로이터통신과 CNN 등이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일 G20 정상회의 부부동반 정상 만찬 자리에서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눴다. 당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 옆자리에 앉아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중반을 넘어섰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맞은편으로 이동했고, 곧이어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 옆자리에 앉은 푸틴 대통령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작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두 정상간 대화는 만찬이 끝날 때까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으며, 푸틴 대통령의 통역사 외에는 별도의 배석자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 통역사가 배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백악관은 "각국 정상들에게 한명의 통역사만 배정됐다"며 "(아키에 여사 옆자리였기 때문에)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영어-일본어 통역사가 배정됐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와 푸틴이 비공개 대화를 가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린 사람은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대표다. 브레머 대표는 17일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장에 있던 목격자 2명의 제보를 받았다"며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브레머 대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사적이고 활발한' 대화를 나눴으며, 만찬장에 있던 다른 정상들은 두 사람의 열띤 대화를 보고 어안이 벙벙하고 아연실색했다. 브레머는 "목격자의 전언에 따르면 만찬장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대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사적으로 친밀하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했거나, 혹은 그렇게 보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보였다"고 말했다.
다자회의에서 정상간 비공식 회동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의 사적인 만남은 여러 면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우선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특검 수사가 이뤄지고,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물론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등에 관한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의 당사자들이 비공개 대화를 가진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날 미·러 공식 회담이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길게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만나 더 대화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의 유착 의혹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백악관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가운데 또 하나의 의문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백악관은 언론의 확인 요청이 있기 전까지 이번 만남을 비밀에 부쳤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별도 회동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의미를 평가절하하기에 급급했다. 이날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은 간략한 대화의 자리였을 뿐 정상회담에 이은 두번째 회동이 아니었으며, 백악관이 이를 숨기려했다는 주장은 악의적이며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의 비판이 집중되고 있는 부분은 안보 관련 문제다.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은 것이 국가안보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브레머 대표도 로이터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사 없이 대화하는 모습에 눈썹을 치켜세우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며 "이같은 행동은 국가 안보 규정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무부 대변인을 지냈던 존 커비는 CNN에 "푸틴같은 사람과 만나면서 통역사와 안보 담당자를 배석시키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통령 외에 대화에 간여한 미국 정부 관계자가 없다는 것은 곧 미국 정부는 대화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이크 맥폴 전 주러시아 대사도 MSNBC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회담내용을 기억하거나 복기해 기록을 남기는 일에 뛰어나다"라며 "그가 이번에도 기록을 남겼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측 통역가가 대화를 녹음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도 단정짓고 "역겹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푸틴과의 비밀 만찬 관련 가짜뉴스는 역겹다(sick)"며 "가짜뉴스가 점점 더 부정직해지고 있다. 20개국 정상들을 위해 마련된 만찬조차 흉계로 만든다"고 일갈했다.
한편 미국 주요언론들은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변호사 간 회동에 배석했던 8번째 인물이 밝혀졌다고 18일 보도했다. 이 인물은 회동 주선자 중 한명인 러시아 신흥재벌 아라스 아갈라로프의 회사인 '크로쿠스 그룹' 상무인 아이크 카벨라츠다.
[노현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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