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일단 목표를 세우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유명한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뚝심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야당과 국내 여론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한 대대적인 조세사면을 통해 우리 돈으로 400조원이 넘는 '검은 돈'을 양성화하는 데 성공한 것. 한동안 뜸했던 불법조업 외국선박에 대한 폭파·침몰 조치도 재개했다.
2일 인도네시아 국영 안타라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국세청은 지난달 31일부로 조세사면 신고 접수를 마감했다. 신고된 국내외 은닉자산은 총 4866조 루피아(약 409조23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당초 목표치(4000조 루피아)를 21.7% 초과한 규모다.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의 40%에 해당한다.
지난해 7월 '조세사면법(Tax Amnesty Bill)'이 인도네시아 의회를 통과한 이후 8개월간 실시된 조세사면 프로그램은 "약간의 세금만 내면 어떻게 모은 돈인지, 어떻게 빼돌렸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해외 도피자금을 자진 신고할 경우 4~10% ▲신고한 자금을 인도네시아 국내로 들여올 경우 그 절반인 2~5%의 세금만 내면 형사처벌 등 모든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국내 은폐 자금을 신고할 경우에도 세율은 2~5%다. 다만 해외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거나, 국내 자금을 신고하는 경우에는 3년간 국채, 국영기업 회사채 또는 증시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한다.
조세사면 프로그램은 글로벌 투자업계로부터 '신의 한 수'라고 높이 평가받아 왔다.
인도네시아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완화하고, 자산 시장에 자금이 유입돼 자산가격 부양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금 환류 과정에서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해 재정수지 개선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세사면 프로그램을 통해 거둔 추가 세수는 135조 루피아(약 11조3500억원)에 달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추가 세수를 톨게이트, 식수, 전력 등 인프라 개발 자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세사면법은 지난해 초 "조세회피자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는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야당의 반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버뮤다, 버진 아일랜드, 케이맨 제도 등 조세회피처에 설립된 계좌의 정보를 2018년부터 교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동정보교환' 협약을 맺었고, 이에 따라 2018년부터는 조세포탈자에 대한 정보 취득이 가능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협약이 발효되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린 사람들은 최고 30%의 소득세와 법인세 25%를 납부해야 한다. 조세회피에 대한 법적책임은 물론 재산축적의 과정에서 부정이 드러날 경우 처벌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도피자금을 최대한 신속히 끌어들여 경제성장의 밑천으로 삼는 동시에 조세사면을 계기로 부패하고 낙후한 조세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법안 통과를 재차 밀어부쳤고, 당초 법안에 반대했던 일부 야당도 결국 입장을 바꿨다.
웰리안 위란토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 이코노미스트는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하면서 "목표치가 매우 높았음에도 이를 초과달성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조세사면 프로그램의 성공에 힘입어 인도네시아 정부는 보다 광법위한 세제 개혁에 나설 수 있는 모멘텀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조코위 대통령은 자국 영해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적발된 외국선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이날 안타라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인도네시아 정부는 불법조업과 불법 어구 사용 등 혐의로 나포한 어선 81척을 전국 12개 지점에서 동시에 폭파해 침몰시켰다. 6척은 인도네시아 업체 소유 선박이었으며 나머지 선박들은 베트남 어선 46척과 필리핀 어선 18척, 말레이시아 어선 11척 등이었다.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는 나포한 어선의 승무원들은 전원 본국으로 송환했지만, 선장은 재판에 회부해 상응한 처벌을 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모두 296척의 외국어선을 침몰시켰다.
인도네시아는 조코위 대통령이 불법조업에 대한 강경대응 기조를 세운 이후 외국어선 단속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남중국해와 맞닿은 나투나 해역을 두고 중국과 어업권 분쟁이 불거진 이후에는 폭발물 사용을 중단했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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