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에 세계 각국 정부와 언론은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미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소식에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는가 하면, 일본과 중국은 아예 생방송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를 보도했다.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9일(현지시간) 한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소식과 관련해 "한국의 국내 정치적 문제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한국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내려진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미동맹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굳건하다"며 "미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동맹을 보호하고 함께 대응하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너 대변인 대행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남은 임기 동안 계속 협력할 것이며, 한국민이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더라도 생산적 관계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토너 대변인 대행은 탄핵결정 직전에도 "한·미 동맹의 근간은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 역시 "변함이 없다"고 확인했다.
미국 언론들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식을 '긴급뉴스' 또는 '속보'로 전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CNN방송은 정규 뉴스 도중 'PARK OUT'이라는 제목으로 속보를 내보내고 촛불집회에서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인용까지 과정을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만장일치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한 사실을 전하며 청와대와 삼성그룹 등 한국사회 전반이 연루된 상황을 보도했다.
중국의 CCTV는 이날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보도를 중단하면서까지 한국의 탄핵 결정을 집중 보도했다. 방송은 이정미 재판관의 탄핵안 선고 장면을 실시간 중계한 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까지 특집으로 보도했다.
봉황TV도 헌재의 판결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동시통역으로 중계하고, 향후 한국의 조기대선과 정치지형 변황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관영 신화통신도 헌재의 탄핵안 선고 직후 긴급 기사로 보도를 냈고, 환구시보는 인터넷 속보를 통해 헌재 만장일치 탄핵결정을 전하며 "한국 역사의 새장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와 위챗에서도 이날 박 전 대통령 탄핵관련 게시글이 수만건 올라왔다. 대부분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연관지은 내용이었다. 일부는 "박근혜가 탄핵됐으니 그가 내린 사드배치 결정도 무효"라고 주장했고, 일부는 "사드는 어차피 미국이 밀어붙이는거라 한국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방송들은 탄핵심판 과정을 동시통역 생중계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NHK TV아사히 등 방송들은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개시와 함께 동시통역 생중계를 시작했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자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 주요 매체들은 박 대통령 파면 소식을 긴급속보로 타전했다.
교도통신은 "한국 국민들은 민주주의 손상에 분노를 느꼈고, 헌법재판소도 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통령 탄핵은 한국 헌정사상 처음"이라며 "국정혼란 해소와 함께 국민 분열을 막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들은 유력 야권 대선주자들이 위안부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어 대선결과에 따라 한일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 내에서 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위안부 합의 이행과 안보협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기자단에 "한국과는 북한 문제에 있어 연대가 불가피하다"며 "(향후 들어설)새로운 정권과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헌재 판결이 "한국을 역사적 시점에 놓이게 했다며 "많은 이들이 이번 판결이 뇌물과 정실인사로 오염된 나라의 개혁 조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FT는 "박근혜 파면 후 집회 참석자들이 충돌하면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대통령 파면 후폭풍을 우려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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