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대사는 48시간 안에 말레이시아를 떠나라"
김정남 피살 사건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지난 4일 저녁 강철 대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강철 대사를 추방하는 결정을 내렸다. 강철 대사는 관련 통보를 받은 뒤 48시간 안인 6일 저녁 6시까지 말레이시아를 떠나야 한다.
말레이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지난달 28일 북측 대표단과 면담하면서 강 대사의 발언에 대한 서면 사과를 요구했고 당일 밤 10시까지 답변이 없으면 상응하는 조처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거의 나흘이 지났는데도 사과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강 대사를 기피인물로 지정한 사유를 설명했다. 외무부는 이어 "이는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불법적 활동에 이용됐을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자하드 하마디 말레이 부총리가 북한과의 무비자협정을 폐기를 선언한 뒤 곧이어 나온 말레이 정부의 대북 초강력 대응이다. 이는 자국에서 대량파괴무기로 전환될 수 있는 맹독성 신경작용제 VX가 동원된 암살 범죄가 발생한 데다, 범죄의 배후로 추정되는 북한의 주권침해 발언을 묵인하면 국제적인 신뢰도 저하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적으로 올해 조기총선을 앞두고 주권침해를 묵인하면 북한에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김정남 피살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말레이 당국의 시신 부검 진행과 수사결과 발표를 비판했고, 말레이와 한국이 야합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 대사가 2차례 기자회견과 1차례 성명을 통해 이런 억지 주장을 폈고, 지난달 28일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현지에 도착한 리동일 전 유엔주재 차석대사도 2차례 회견을 통해 같은 발언을 되풀이했다.
말레이 외교부는 이날 "이번 조처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과의 관계 재검토 절차의 일부로, 양국 간 비자면제협정 파기에 이어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말레이 당국이 자국 주재 대사 추방에 이어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까지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말레이는 이미 지난달 20일 모하맛 니잔 평양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인 바 있다. 따라서 강 대사가 추방되면 양국 간의 외교 소통 채널이 사실상 마비되는 셈이다.
이와관련해 현지 소식통은 "화학무기로 분류되는 VX가 동원된 김정남 암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판 여론을 피하고자 북한은 말레이의 수사결과 등을 지속해서 부정해야 하며 이는 양국 간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말레이시아로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 얻을 게 별로 없으므로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5일 북한의 주요한 기밀을 들고 탈북하는 탈북민에 대한 보상금을 기존 수준의 4배인 최대 10억 원으로 올리는 '탈북민 지원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 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이는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 같은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위급 인사의 추가 탈북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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