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TPP 철폐서명 안팎으로 유럽연합(EU)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는가 하면 주요 인사들이 대(對) 러시아 경제제재 해제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우선주의'의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EU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후안 마누엘 콜롬비아 대통령과 양국 간 관광, 교육, 안보 분야 협약에 서명한 후 성명을 통해 "프랑스와 유럽은 태평양동맹(PA)과 통상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와 유럽은 PA와 함께 무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통상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무역협정 추진을 시사했다.
PA는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물류와 인력, 자본의 자유로운 교환 및 움직임을 촉진하며 회원국과 준회원국 사이의 정치·경제 통합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2012년 설립됐다. 현재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페루 4개국이 정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이들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중남미 지역 전체의 39%에 달한다. 회원국 인구는 2억1700만명 정도이며 주로 광물이나 식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 행보를 나타내는 틈을 타 세계 무역시장에서 EU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로 관측된다. 더욱이 오는 27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첫 정상회담 파트너인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만남 직전 결정된 사항이라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보호무역은 세계가 직면한 여러 난제에 대한 최악의 대응책"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다.
프랑스의 유력 대선 주자인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 등이 국제무대에서도 친(親) 러시아 행보를 본격화한 점도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낡은 동맹'이라고 깎아내리는 등 친러 성향을 노골화함에 따라 유럽이 러시아 제재를 미국에 앞서 먼저 해제함으로써 트럼프에 반격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그동안 EU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에 가장 적대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사상 유례 없는 미국과 러시아 간 밀월관계를 깨뜨려야 EU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피용 전 총리는 이날 독일과 유럽은 러시아와 더 좋은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후 러시아에 부과된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며 "러시아는 유럽의 주요 파트너가 돼야 한다"며 "어느 국가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이러한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는 "트럼프가 EU를 제치고 러시아와의 관계에 주도권을 쥐게 해서는 안 된다"며 러시아 제재 해제에 있어 유럽이 선수를 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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