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은 달러 가치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외환시장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발언을 해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하면서 "달러 가치가 너무 세다"고 지적한 뒤 "이래서는 미국 기업이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달러 가치가 너무 높아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인터뷰 내용이 17일 뒤늦게 밝혀지면서 미 달러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조세 개혁이 달러 강세를 이끈다면 우리는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강달러가 분명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는 강경 발언까지 쏟아냈다.
미국 최고 통치권자의 구두 개입에 시장이 요동치면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데이비드 코토크 쿰버랜드어드바이저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만약 트럼프의 구두 개입이 특별한 계획 없이 되는대로 막 나온 발언이라면 이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 달러 가치는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로 4% 가까이 올랐으며 2014년과 비교하면 약 25% 상승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돌발 발언 이후 6개 주요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DXY)는 100.3까지 떨어지면서 100선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달러지수가 이처럼 하락한 건 지난달 8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처음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희망과는 달리 향후 달러 강세 요인이 크다는 점이다.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확대, 감세, 규제완화를 표방한 트럼프노믹스는 미국 경제의 성장세를 자극해 달러 강세를 일으킬 수 있고 올해 세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통화 긴축 방향도 강달러를 부추길 주요 재료다. 미국 대기업들이 해외에 '파킹'해놓은 대규모 달러 자금을 미국 내에 끌어오고 중국과 멕시코 등의 수입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공약 역시 시장이 달러 강세에 베팅하도록 유도했다.
이같은 상황은 달러 강세를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 트럼프와 수시로 충돌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번과 같은 트럼프의 변칙적인 시장 개입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행정부는 대체로 강달러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이고 저금리 하에서도 인플레이션을 관리 가능한 수준에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관례적으로 대통령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재무장관도 시장의 충격을 우려해 중립적 수준의 발언을 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외환 딜러들은 트럼프발 돌발 변수를 예견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우 글로벌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외환담당 대표는 지난해 매일경제와 만나 "어느 순간 트럼프가 '미 달러가 너무 올랐다'는 트윗을 날리기라도 하면 외환시장이 한순간에 박살날 수 있다"면서 트럼프 트윗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달러 강세를 지적한 트럼프 당선인의 돌발 발언에 달러당 원화값은 크게 출렁였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 보다 7.8원 오른 1166.7원을 기록했다. 이날 도쿄외환 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오후 3시 16분 현재 113.25엔에 달했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트럼프의 정책이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과거 외환시장은 예측 가능성이 높아 완만하게 조정됐지만 트럼프의 경우 시장에서 '예측 불가능한 인사'로 인식해 발언을 할 때마다 시장이 한꺼번에 반응하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달러 강세가 이미 시장에 상당부문 반영됐기 때문에 트럼프의 정책이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일방향적 강달러 보다 등락을 거듭하는 변동성 장세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든 장세가 계속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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