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과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에 이어 일본까지 마이너스 금리 영역에 발을 내딛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이너스금리발 글로벌 통화전쟁 심화 가능성 등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들이 정책금리를 제로로 떨어뜨리고 국채나 다른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량을 확 늘리는 양적완화 정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존 상식을 파괴하는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경기 부양과 디플레이션 해소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진단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대형 투자은행(IB)인 JP모건의 자료를 인용해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는 세계 국채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5조 5000억달러(약 6624조원)를 돌파했다고 전했다. 일본 마이너스 금리 결정 이후 일본과 독일, 프랑스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일본 2년물 국채 금리는 -0.085%, 5년물 국채금리는 -0.08%까지 떨어졌다. 독일 5년물 국채 금리는 -0.30%를 기록했다. 핀란드와 스웨덴 국채도 10년물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나타냈다.
마이너스 금리 실효성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린다. 일단 일부 유럽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의 약발을 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스웨덴은 지난해 연간 기준 2.8%, 덴마크는 1.6%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유럽국가들 중에서 성장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표된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각각 1.1%와 3.2%를 기록해 마이너스 금리의 효과를 보고 있다. 프랑스는 4년, 스페인은 8년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3년 연속 역성장을 한 이탈리아 경제도 올해는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전망했다.
반면 7년간의 제로금리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해 12월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국은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7%로 잠정 집계돼 시장의 실망감을 키웠다. 소비를 비롯한 상당수 분야에서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3분기 GDP 성장률(각각 3.9%, 2.0%)에 비해 크게 못미치는 성적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자충수를 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스웨덴의 물가상승률은 목표치인 연 2%보다 훨씬 낮은 마이너스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고 덴마크도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0.5% 상승에 그쳤다. 반면 부동산 버블은 더욱 심각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덴마크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15년 상반기에만 8% 올랐고 스웨덴은 지난 1년간 16% 이상 급등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금융시스템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와 오히려 경제에 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덴마크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대출 이자를 내는 대신 돈을 받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은행들에게도 큰 타격이 되고 있다. 덴마크 지스케방크의 에릭 가데베르그 상무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소비자들에게 이 비용이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덴마크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마이너스 금리는 매년 은행들에게 10억 크로네(약 1800억원)의 손실을 입히고 있다.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기보다는 대출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을 피해야 한다”면서도 “0%대에 불과한 일본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금융정책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지금 역사적인 초저금리에서도 은행이 대출을 크게 늘리지 않는건 기업의 자금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근본적인 문제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의해 해소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이니치신문도 “금리는 이미 낮은 수준으로 추가적인 하락이 설비투자와 소비를 자극해 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도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채택으로 고민이 깊어졌다.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에 불을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 한차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신동준 하나금융투자 자산분석실장은 “일본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추가적인 통화 완화정책에 나서고 미국의 기준금리가 당초 예상보다 더뎌질 땐 한은도 금리인하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상반기에 1번 더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이덕주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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