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같이 흰 아카데미 시상식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
미국 유명 흑인 배우이자 감독인 스파이크 리는 18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인스타그램 메세지를 통해 내달 28일로 예정된 제 88회 아카데미(일명 오스카)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후보 40명 가운데 유색인종이 하나도 없는데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18일은 마침 미국이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고(故)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일을 지정한지 3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추모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백인 경관의 흑인 살해로 지난해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흑백갈등 문제가 올들어 오스카 시상식을 둘러싸고 불길이 다시 번지는 양상이다.
미국 최대 영화인 축제이자 전세계 이목을 끄는 오스카 시상식을 보이콧(거부)한 건 리 감독 뿐만이 아니다.
미국 유명 흑인 배우인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메시지에서 “유색인종은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무시해야 할 때”라며 불참을 선언했다. 그녀는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 2편에 출연했으며 최근엔 미국 폭스TV 인기드라마인 ‘고담’에서 여성 악역으로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그녀가 시상식 불참을 선언한 데는 남편 윌 스미스를 주최측이 무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윌 스미스는 최근 미국프로축구(NFL) 선수들이 겪는 뇌진탕 후유증을 그린 영화 ‘뇌진탕’에서 열연했다. 당초 헐리우드에선 뇌진탕이 윌 스미스 열연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와 쌍벽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수상 후보에서 레버넌트는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후보를 비롯해 12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된 반면 뇌진탕은 주목을 끌지못했고 윌 스미스는 시상식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핑킷스미스는 “이번엔 TV로도 안볼 생각”이라고도 냉소를 퍼부었다.
이런 헐리우드 거물 스타들의 반발로 인해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미 ‘오스카는 너무 백인적이다’라는 해시태그가 물결치고 있다. 올해 시상식 진행자인 흑인 코디미언 크리스 록도 트위터에 “이번 오스카는 백인들의 잔치”라며 네티즌들에 동조하고 있다.
80년이 넘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여된 2900여개 트로피 중 흑인이 가져간 건 32번 뿐이다. 지난 2002년 영화 ‘몬스터 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할리 베리는 무려 73년만에 처음 나온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였다. 백인 중심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게 된 배경이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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