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가 미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워싱턴DC 도심 한가운데에서 전례없던 테러 대비 새벽 항공훈련을 시행하는가 하면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도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이유없는 반감이 혐오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고 테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마이클 맥콜 연방 하원 국토안보위원장이 17일 “파리 테러 배후에 20명이 연관돼 있다”고 밝히면서 우려를 더했다.
북미지역 영공 방위를 맡고 있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18일(현지시간) 자정부터 새벽 2시30분까지 워싱턴DC 상공에서 테러 대비 항공훈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미국 공군의 F-16 전투기와 민간항공 초계부대 전투기, 해안경비대 소속 MH-65 돌핀 헬리콥터 등이 동원돼 테러 위협을 사전에 적발하고 진압하는 훈련이다. NORAD는 2011년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캐나다를 아우르는 북미 상공에서 항공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왔지만 워싱턴DC 도심을 특정해 훈련을 실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파리 테러 후폭풍은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까지 불어닥쳤다. 테러가 발생하자 오바마 정부 초대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약한 외교정책때문에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집단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IS 발호를 초래한 이라크 침공을 힐러리가 찬성했다는 이유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IS에 대한 강경조치, 난민수용 재검토 등을 주장하는 공화당 대선주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파리 테러로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다. 힐러리와 루비오의 맞대결을 가정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힐러리는 40%대 후반에서 중반으로 지지율이 점차 하락하고 있고 루비오는 40%초반에서 중반으로 상승 추세다.
시리아 난민 수용여부를 놓고도 미국이 분열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수용을 거부한 주가 31개주로 늘어나며 미국 전체 주의 절반을 넘어섰다. 공화당 주지사가 집권한 주가 대부분이지만 민주당 주지사 지역도 포함됐다. 게다가 폴 라이언 연방 하원의장이 난민수용 계획 잠정 중단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의회와 백악관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시리아 난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이어서 난민수용을 둘러싼 대치국면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필리핀 현지에서 “난민수용 거부는 과잉반응이며 미국의 리더십에도 상처를 줄 수 있다”고 강조하고 백악관이 34개 주지사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며 난민수용을 설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라이언 의장은 이르면 금주 중 시리아 난민수용 거부 법안을 표결에 부칠 것으로 알려졌다.
무슬림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도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17일 텍사스주 오스틴 외곽의 이슬람사원에 누군가 인분을 투척하고 꾸란을 찢어 놓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파손된 기물이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파리 테러 이후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건이다. 또 이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향하던 항공기에서 중동계 무슬림으로 추정되는 승객 4명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의심을 받고 강제 하차 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공공종교연구소(PRRI)가 17일 공개한 새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사회 각 분야에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변해 동성애자 68%, 흑인 63%, 히스패닉 56%, 여성 53%를 훨씬 앞섰다.
미국 이슬람관계위원회는 유사한 증오범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며 무슬림과 테러집단이 무관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캐나다에서도 지난 16일 토론토에서 남성 2명이 무슬림 여성 1명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 14일에는 이슬람사원 방화사건도 일어났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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