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논의해 체결된 계약이 있었다. 당연히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는데 가족경영시스템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1948년 설립된 핀란드의 페인트 회사 테크노스는 경영권 세습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기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최근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테크노스 본사에서 40대 중반의 CEO 파울라 살라스티(Paula Salastie)를 만났다. 4대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그녀는 가장 먼저 자신의 집무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집무실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벽에 붙어있는 초상화였다. 살라스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녀의 증조 할아버지다. 12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테크노스는 경제불황 속에서도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매출액이 2억1500만유로->2억4700만유로->2억6200만유로->2억8000만유로->2억9500만유로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익도 같은 기간 2800만유로->3100만유로->3300만유로->3500만유로->3710만유로로 늘었다. 그녀는 이 같은 실적이 (선대 경영인이 그랬듯)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라는 믿음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역사가 되풀이 된다는 믿음’, ‘핏줄에 대한 착각’ 등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경영권 승계의 최대 장점은 선대 경영인의 후광을 후대 경영인이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
- 승계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가
▶ 4대째 이어져오면서 부드럽게 넘어오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첫째 아들이 기업경영을 이어가길 원했는데 당사자가 원하지 않기도 했고, 승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회사가 팔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16살때부터 가족들은 나에게 인수인계와 승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줬다. 18살때 오빠와 기업을 누가 이어받을지 얘기했고, 내가 이어받는 게 최적이라고 정리했다. 이후 난 스스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일찌감치 회사에 들어와 일했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 역시 많은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최대한 잡음없이 경영권을 승계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사장 자리에 올랐나
▶ 10대 때부터 경제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에 졸업한 후 곧바로 테크노스에 들어왔다. 처음엔 페인트 통에 라벨을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후 영업과 마케팅, 리서치, 법무 등 다양한 업무를 해봤다. 테크노스가 진출해 있는 스웨덴, 덴마크. 영국, 독일에서도 일했었다. 최근까진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하다 올해 초 CEO로 취임했다.
- 경영권을 가족에게 승계하는 기업의 강점은 뭔가
▶ 경영 활동에 있어서 믿음이 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원들도 가족같이 대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크다. 회사에선 직원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들어 영업팀에게 기술에 대한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데, 직원들 입장에선 지식을 채우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회사가 60년 넘게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믿음이었다. 1990년대 초반 은행이 문을 다 닫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돈을 빌리지 못해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을때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믿고 기다려줬다. 직원들 역시 회사를 믿어줬다. 회사가 휘청거릴 때 직원과 주위 사람들이 (선대 경영인이 그랬듯) “다시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테크노스를 믿는다는 것이 가업승계 기업의 강점이라고 본다.
- 가족승계 기업인데 이제 당신 혼자 남았다
▶ 주주가 2명인데 나와 아버지다. 내가 95% 지분을 갖고있고, 아버지가 5%를 보유하고 있다. 경영쪽에선 나 혼자 있다보니 고통분담을 할 형제가 없다는 것이 힘들때도 있다. 그러나 직원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기 때문에 외로움은 금방 사라진다.
[헬싱키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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