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스인들에게 ‘저승사자’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보다 더 깐깐했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73)이다.
지난 5일 치러진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반대(OXI)’ 진영이 포스터에 그의 얼굴을 실었을 정도로 쇼이블레 장관은 그리스 국민에게 가장 불편한 해외 인사였다. 엄격한 긴축정책을 강요하면서 그리스를 괴롭히는 악마와 같은 인물로 묘사됐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유로존 회원 지위는 돌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리스를 또다시 압박했다. 그는 “최근 잭 루 (미국) 재무장관에게 유로존에 있는 그리스를 줄테니 달러를 쓰는 푸에르토리코를 달라고 얘기했다”고도 했다. 유로존 문제에 자꾸 간섭하는 잭 루에게 응수하면서 귀찮은 존재인 그리스에 대한 속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리스 일간지 카티메리니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은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이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쫓아내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다른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인들의 강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쇼이블레 장관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 집계에 따르면 쇼이블레 장관은 개인 역대 최고인 70% 지지율을 얻어 67%인 메르켈 총리보다 높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쇼이블레 장관의 그리스에 대한 강경한 입장때문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메르켈 총리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독일 정치권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어 2인자 위치에 있지만 과거에는 메르켈 총리와 비교할 수 없는 거물 정치인이었다. 헬무트 콜 전 총리를 도와 독일 통일을 만들어냈고, 이후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1990년 정신이상자의 총격을 받아 하반신 불수가 된뒤 1998년 기민당 비자금 스캔들에 휩쓸려 물러나면서 당시 정치 신인이던 메르켈에게 총리 자리를 내줬다. 이후 메르켈 총리 밑에서 내무 및 재무장관으로 9년째 일하고 있다.
쇼이블레 장관은 ‘유로화의 수호자’다. 유로화 출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2010년 유럽금융위기를 해결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로존에 대한 애착이 큰 그가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그가 그리스를 껴안을지 아니면 내쫓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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