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하버드대 교수)이 장기 경기침체(세큘러 스태그네이션) 가능성을 놓고 ‘블로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싸움의 단초는 지난달 30일 블로그를 개설해 본격적인 블로거(?) 활동에 나선 버냉키 전 의장이 제공했다. 다음날 버냉키 전의장은 지난 2013년 서머스 전 장관이 꺼내든 장기 경기침체 가설을 반박하는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서머스 전장관은 2013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컨퍼런스에 참석, 글로벌 금융위기후 미국 등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저성장 추세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기업투자 축소·만성적 수요부족 등에 따른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버냉키 전의장은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지난 38년 세큘러 스태그네이션 가설을 처음 내놨던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 진단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며 “그런데도 서머스 전장관은 한센의 예측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당시 한센 교수는 인구성장률·기술진보 둔화로 기업들이 새로운 자본재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지고 이 때문에 장기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후 경기호황과 인구폭발·기술진보에 따른 경기활황세가 나타나면서 이같은 장기 경기침체 가설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버냉키 전의장은 “미국 경제가 현재 세큘러 스태그네이션에 직면해있지 않을뿐더러 설사 장기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더라도 이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래리가 제시한 더 많은 재정지출 확대는 잘못된 해결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하룻만인 지난 1일 까칠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서머스 전장관이 자신의 블로그에 ‘장기침체에 대해: 버냉키에 보내는 답장’이라는 제하의 반박문을 게재했다. 서머스 전장관은 “나의 장기경기침체 전망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기를 희망한다”면서도 “지난 수년간 대다수 선진국 성장률 전망치가 아래쪽으로 하향조정돼왔다”고 진단, 이미 선진국 경제가 장기저성장국면에 빠져든 상태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서머스 전장관은 “벤은 영구적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이는 타당한 재정정책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좀더 이론적으로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머스 전장관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뒤 몇시간뒤 버냉키 전의장은 또다시 블로그를 통해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버냉키 전의장은 “장기경기침체 가설의 허점은 국내자본형성과 국내가계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미국가계·기업들은 해외시장에 투자할 수 있다. 시각을 해외로 넓히면 세큘러 스태그네이션의 많은 전제 조건들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버냉키 전의장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글로벌 저축과잉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서머스 전장관이 앞으로 또 어떤 식으로 대응에 나설지 호사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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