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가 긴 ‘방학’에 들어갔다. 이제 8월 개최 예정인 코보컵까지 팀마다 선수마다 ‘방학 숙제’를 풀려고 머리를 싸맬 것이다.
그에 앞서 2021~2022 시즌은 각 개인에게 어떤 시즌이었을까.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가 한 달에 걸쳐 사연 많은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이도희 전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여자부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은 강성형 감독은 부임 첫 시즌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이 전 감독이 ‘정규리그 1위’에 오른 2020년처럼 코로나19 탓에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우승팀 지위를 갖지 못하고 ‘1위’에 만족해야 했다. 강 감독이나 구단이나 이 부분은 스트레스다.
“(코로나19로 인한 시즌 종료) 이 얘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아요. 2년 전에도 잘했는데 말이죠. 불안감이 항상 있었는데, 결국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임 직전 최하위였던 현대건설을 수직상승시켜 1위로 올려놓은 비결은 무엇일까. 외국인 선수 야스민의 합류와 선수단 분위기 전환이라고 했다.
“야스민이 혼자 다 한 게 아니지만, 본인 역할은 다 했죠. 전체의 30~40% 지분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있긴 하겠지만, 지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고요. 선수단이 처음에는 우울함이 있어서 반전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전체적으로 달라진 것 같고요. 주전, 비주전 차별을 없앤 것도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혼자도 6명도 아닌 19명이 함께 가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올스타전에서 이다현, 정지윤과 함께 음악(When we disco)에 맞춰 춤을 췄던 것도 달라진 선수단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선수들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서 춤을 춘 것인데, 원래라면 제 성격상 할 수 없었어요. 선수들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승낙했어요. 가족들도 ‘올스타전이니까 재밌게 하는 게 낫지 않겠나’는 의견을 줘서 결국 하루 종일 춤 연습을 했었죠.”
개별 선수들 평가에 대해선 말을 아끼거나 삼갔다. 세심한 성격을 가진 선수들이 혹시나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팀(LIG손해보험)을 이끌 때와 또 다른 지도 방식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건설 부임 직전까지 맡았던 여자배구대표팀 코치 시절 겪은 이탈리아 출신 라바리니 감독과 얽힌 일화가 흥미롭다.
“남녀 배구가 차이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차이가 크다는 걸 저는 느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는 라바리니 감독이 하는 걸 보고 느낀 게 많아서 많이 다가서려고 했고,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Q.라바리니 감독이 9살 동생이죠?) 라바리니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힘들었겠지만, 외국인이어서 제가 다가서는 게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남녀 배구가 스피드와 파워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여자배구는 많이 연구하고 준비하면 잘 맞아떨어집니다. 움직임이나 상대 공략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현대건설 감독 부임 시기는 지난해 도쿄올림픽 직전이었다. 라바리니 감독이 만류하진 않았는지 궁금했다.
“붙잡지 않던데요. 하하, 라바리니가 ‘잘됐으면 한다’는 메시지로 축하해줬고요. 시즌 중간에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도 해줬습니다. 대표팀도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4위)을 내서 서로 잘 된 것 같습니다.”
선수들로부터 ‘아재 개그’를 자제해달란 요청을 받았다는 강 감독은 ‘부드러운 리더십’이 통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 성격이 ‘강성’은 아닌 건 맞고요. (Q.이게 아재 개그란 거죠?) 하하. 아무튼 제 성격이 부드러운데 이런 성격이 여자배구에 맞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팀이 잘 나가니까 그런 얘기도 나오는 것이겠죠.”
강 감독은 다른 모든 팀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다음 시즌 여자부가 정말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 선수들한테 ‘챔프전이 열리지 못해 아쉬울 텐데 그걸 남겨놨기 때문에 더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위로하며 얘기했습니다. 다음 시즌은 힘든 시즌이 될 것 같은데, 기본기를 더욱 강조하고 랠리에 강한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서 즐거운 배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챔프전 우승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흥국생명과 8년 동행을 마친 박미희 감독, 아니 ‘박 전 감독’은 찬찬히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이 기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표현했다. 박 전 감독은 부임 기간 5차례 ‘봄 배구’, 2017년 정규리그 1위, 2019년 국내 여성 지도자로 사상 첫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마지막 시즌은 정규리그 6위로 마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부임 당시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여성 감독 타이틀 때문에요. 그러다 ‘내가 못하면 다음 여성 감독이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결 부담을 덜고 선수들 지도를 할 수 있었어요.”
박 전 감독은 과거를 회상하며 여러 차례 울먹이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번은 여성 지도자로는 국내 프로 사령탑을 맡아 GS칼텍스를 이끈 조혜정 전 감독(2010~2011년)을 떠올릴 때였고, 또 한번은 흥국생명을 마지막으로 지휘한 경기 얘기를 할 때였다.
“그 선배(조혜정)가 2년 만에 관뒀다고 해서 실패라고 할 수 없는 건데, 여성 감독 언급이 될 때마다 자꾸 실패라고 해서 그걸 바로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승하고 가장 먼저 전화도 드렸고, 시상식에서 제 마음 속 이야기도 했어요. 그 이후로는 ‘실패’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조 전 감독이 ‘다리’를 놓고 박 전 감독이 ‘연착륙’을 하면서 이도희 전 감독도 2017년 현대건설 사령탑에 올랐다. 두 여성 감독이 한때 불꽃이 튀는 경쟁을 벌이며 우승을 나눠 차지하기도 했다. 당연히 라이벌 의식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서로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해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이 아니라 ‘팀 대 팀’ 간 대결로 봤어요. 경기가 감독끼리 대결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지는 거죠. 라이벌 의식이란 건...제가 경험이 조금 더 있어서 접고 가는 거지만, 그 감독이 선배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박 전 감독은 한 시즌만 더 했더라면 이정철 전 감독과 동률인 여자부 최다 경기 기록(240경기)을 경신할 수 있었고, 두 시즌을 더 해서 10년을 채웠더라면 이정철 전 감독의 최다승(157승 ※현재 125승)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기록 행진이 멈춘 것이지 끝난 건 아닌 것 같다. 복귀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안이 온다면 (지도자로 현장 복귀를) 마다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복귀한다면 제 자신에게 인색하지 않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지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감독 시작했을 때는 어설펐지만, 경험이 어느 정도 쌓였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요. 물론, 감독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을 거고요. 어쨌든 현장에 남아 있으려고 합니다.”
신인상을 받은 이윤정은 그냥 신인도 아니고 ‘중고’이자 ‘무늬만 신인’이어서 더욱 화제였다. 실업 무대 수원시청에서 5년 활약하다가 프로에 뛰어들어 신인상을 거머쥔 첫 사례여서 그랬다.
고교 졸업반 때 “더 많은 경기 출전을 위해 실업팀으로 갔다”는 이윤정은 한 계단씩 스텝을 밟아왔지만, 욕심도 야망도 많아 보였다. 다시 프로와 실업 선택권이 주어지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바로 프로팀으로 올 거예요. 고3 때 내린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지만, 두 무대를 모두 경험해보니 그래도 프로를 선택할 거예요. 그때 프로에 갔더라면 신인상을 지금 보다 더 받고 싶고, 욕심이 났을 거고요. 욕망이 생겼을 거예요. 하하.”
첫 시즌, 프로와 실업 무대 간 차이도 느꼈다. 그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외국인 선수와 백어택이 키워드였다.
“실업팀에서는 아무래도 전위 공격수가 있으니까 백어택을 거의 시도를 하지 않게 되고, 연습도 많이 하지 않았죠. 반대로 프로에 와서는 외국인 선수도 있고, 힘이 있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에 시도를 많이 하게 됐죠. 그래서 프로에 와서 백어택을 많이 배우고 (외국인 선수) 케이시와 호흡을 많이 맞췄어요. 훈련 때 켈시와는 제가 ‘공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켈시가 ‘공 낮게 줘’ 이러면서 서로 얘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이윤정하면 ‘유교 세터’란 별명이 단번에 떠오른다. 서브를 하기 전에 심판에게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윤정은 일종의 버릇이자 루틴이 되어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서브 치기’ 전에 인사를 해온 건데요. 프로에서도 나만의 이런 루틴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유교 세터’ 얘기가 계속 나와서 한번은 인사를 안 하고 서브를 해봤는데 서브가 잘 안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인사하고 서브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프로와 실업 간의 차이도 궁금했다. 가장 먼저 관중과 훈련량에 놀랐다고 했다.
“처음에 운동량이 너무 많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이게 프로구나’ 싶기도 하면서 적응하는데 힘들었어요. 김천 숙소에서 오전, 오후, 야간 이렇게 하루에 세 번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오히려 지금은 훈련을 많이 안하면 걱정돼요. 실업 시절엔 1년에 대회가 3~4개라 경기 수가 적어서 훈련도 그만큼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또 대회에 나가면 관중도 많지 않았는데, 프로에 와서는 매 경기 많은 팬이 찾아오니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죠.”
팬들도 하나둘씩 생기고 에피소드도 쌓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경기 끝나고 선수단 버스에 타려는데, 한 친구가 팬이라며 편지와 선물을 주더라고요. 그 친구 옆에 있던 친구도 제 팬이라고 하는데, 얘기하다보니 둘의 이름이 똑같더라고요. 유림이. 나중에는 둘이 친해져서 같이 경기 보러 오더라고요. 고마워, 유림이들아.”
그렇게 첫 시즌이 지나갔고, 이제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더 이상 신인도 아니다.
“언니들이랑 플레이오프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좋은 성적을 기대했는데 시즌이 조기 종료가 되니 속상하기도 했어요. 꿈같고 아쉬움이 남는 시즌인데, 두 번째 시즌에선 개인상 욕심 보다는 팀이 우승할 수 있게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2021~2022시즌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마지막 경기였던 남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이었다. 시리즈 전적 1승1패, 마지막 5세트에서 듀스 끝에 21-20. 대한항공은 극적으로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아직도 여운이 남는 역대급 혈투였다.
대한항공이 다시 한번 통합우승을 차지한데는 곽승석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준우승팀 KB손해보험의 ‘괴물 공격수’ 케이타에 밀리긴 했지만 ‘MVP 2위’도 했다.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가득한 시즌이었다.
“제가 없으면 누가 봐도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당연하죠. (Q.그럼 우승의 지분은 어느 정도일까요?) 지분이라...50퍼센트하겠습니다. 거의 절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하. 제가 살이 워낙 안찌는 체질이고 살이 빠져도 얼굴부터 빠지긴 해서 불쌍해 보이기는 하는데, 올 시즌 그만큼 많이 뛰어서 그런 것도 있겠죠.”
시즌 종료와 함께 FA 자격을 얻은 곽승석은 출연 이후 대한항공과 총액 7억1000만원(연봉 5억원, 옵션 2억1000만원)에 재계약했다. 우승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신인 드래프트 때 우리캐피탈로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운명인 건지 대한항공에 와서 지금껏 뛰고 있는데 ‘대한항공에 오지 안았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잘되려면 실력은 물론 운도 있어야 돼요. 저는 대한항공 와서 (승무원) 아내와 결혼까지 했잖아요. 하하.”
대한항공은 시즌을 앞두고 57세의 이탈리아 출신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과 결별하고 34세의 핀란드 출신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함께 했다. 새 체제에서 1라운드에선 6위까지 추락하는 위기도 겪었다.
“처음에 토미(감독 호칭) 나이 듣고 엄청 놀랐어요. 지도자 경력이 많다고 해도 나이가 어려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나이가 그 정도면 2살 위인 (한)선수형도 감독 못할 것 없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배구 철학과 열정은 확실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루 종일 배구 생각뿐이에요. 가벼운 훈련 분위기 속에서 기본틀을 깨는 배구? 상상력이 풍부한 배구를 하고요. 만화배구 느낌이랄까요. 머리로만 생각하는 배구를 몸으로 실천하는 배구를 했어요. 예전에는 하면 안된다고 했던 배구 기술들, 장난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토미가 푸시를 했어요.”
유난히 상복이 없는 곽승석은 대신 기록을 향해 뛰겠다고 밝혔다.
“내년에 3년 연속 통합우승이 목표고요. 개인적으로는 서브 200개(현재 196개), 레프트 최초 수비 10,000개(현재 7782개·통산 3위) 달성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배구가 신체조건이 좋아야 성공할 수 있는 건데, 꼭 그렇지만은 아닌 곽승석이라는 선수를 보면서 응원과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국영호 기자]
#프로배구 #V리그
그에 앞서 2021~2022 시즌은 각 개인에게 어떤 시즌이었을까.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가 한 달에 걸쳐 사연 많은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1위 현대건설’ 강성형의 웃음
지난해 이도희 전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여자부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은 강성형 감독은 부임 첫 시즌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이 전 감독이 ‘정규리그 1위’에 오른 2020년처럼 코로나19 탓에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우승팀 지위를 갖지 못하고 ‘1위’에 만족해야 했다. 강 감독이나 구단이나 이 부분은 스트레스다.
“(코로나19로 인한 시즌 종료) 이 얘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아요. 2년 전에도 잘했는데 말이죠. 불안감이 항상 있었는데, 결국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임 직전 최하위였던 현대건설을 수직상승시켜 1위로 올려놓은 비결은 무엇일까. 외국인 선수 야스민의 합류와 선수단 분위기 전환이라고 했다.
“야스민이 혼자 다 한 게 아니지만, 본인 역할은 다 했죠. 전체의 30~40% 지분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있긴 하겠지만, 지분이 많지는 않을 것 같고요. 선수단이 처음에는 우울함이 있어서 반전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전체적으로 달라진 것 같고요. 주전, 비주전 차별을 없앤 것도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혼자도 6명도 아닌 19명이 함께 가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올스타전에서 이다현, 정지윤과 함께 음악(When we disco)에 맞춰 춤을 췄던 것도 달라진 선수단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선수들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서 춤을 춘 것인데, 원래라면 제 성격상 할 수 없었어요. 선수들이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승낙했어요. 가족들도 ‘올스타전이니까 재밌게 하는 게 낫지 않겠나’는 의견을 줘서 결국 하루 종일 춤 연습을 했었죠.”
개별 선수들 평가에 대해선 말을 아끼거나 삼갔다. 세심한 성격을 가진 선수들이 혹시나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팀(LIG손해보험)을 이끌 때와 또 다른 지도 방식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건설 부임 직전까지 맡았던 여자배구대표팀 코치 시절 겪은 이탈리아 출신 라바리니 감독과 얽힌 일화가 흥미롭다.
“남녀 배구가 차이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차이가 크다는 걸 저는 느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는 라바리니 감독이 하는 걸 보고 느낀 게 많아서 많이 다가서려고 했고,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Q.라바리니 감독이 9살 동생이죠?) 라바리니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힘들었겠지만, 외국인이어서 제가 다가서는 게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남녀 배구가 스피드와 파워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여자배구는 많이 연구하고 준비하면 잘 맞아떨어집니다. 움직임이나 상대 공략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현대건설 감독 부임 시기는 지난해 도쿄올림픽 직전이었다. 라바리니 감독이 만류하진 않았는지 궁금했다.
“붙잡지 않던데요. 하하, 라바리니가 ‘잘됐으면 한다’는 메시지로 축하해줬고요. 시즌 중간에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도 해줬습니다. 대표팀도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4위)을 내서 서로 잘 된 것 같습니다.”
선수들로부터 ‘아재 개그’를 자제해달란 요청을 받았다는 강 감독은 ‘부드러운 리더십’이 통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 성격이 ‘강성’은 아닌 건 맞고요. (Q.이게 아재 개그란 거죠?) 하하. 아무튼 제 성격이 부드러운데 이런 성격이 여자배구에 맞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팀이 잘 나가니까 그런 얘기도 나오는 것이겠죠.”
강 감독은 다른 모든 팀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다음 시즌 여자부가 정말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 선수들한테 ‘챔프전이 열리지 못해 아쉬울 텐데 그걸 남겨놨기 때문에 더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위로하며 얘기했습니다. 다음 시즌은 힘든 시즌이 될 것 같은데, 기본기를 더욱 강조하고 랠리에 강한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서 즐거운 배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챔프전 우승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굿바이 흥국생명’ 박미희의 눈물
흥국생명과 8년 동행을 마친 박미희 감독, 아니 ‘박 전 감독’은 찬찬히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이 기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표현했다. 박 전 감독은 부임 기간 5차례 ‘봄 배구’, 2017년 정규리그 1위, 2019년 국내 여성 지도자로 사상 첫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마지막 시즌은 정규리그 6위로 마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부임 당시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여성 감독 타이틀 때문에요. 그러다 ‘내가 못하면 다음 여성 감독이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결 부담을 덜고 선수들 지도를 할 수 있었어요.”
박 전 감독은 과거를 회상하며 여러 차례 울먹이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번은 여성 지도자로는 국내 프로 사령탑을 맡아 GS칼텍스를 이끈 조혜정 전 감독(2010~2011년)을 떠올릴 때였고, 또 한번은 흥국생명을 마지막으로 지휘한 경기 얘기를 할 때였다.
“그 선배(조혜정)가 2년 만에 관뒀다고 해서 실패라고 할 수 없는 건데, 여성 감독 언급이 될 때마다 자꾸 실패라고 해서 그걸 바로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승하고 가장 먼저 전화도 드렸고, 시상식에서 제 마음 속 이야기도 했어요. 그 이후로는 ‘실패’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조 전 감독이 ‘다리’를 놓고 박 전 감독이 ‘연착륙’을 하면서 이도희 전 감독도 2017년 현대건설 사령탑에 올랐다. 두 여성 감독이 한때 불꽃이 튀는 경쟁을 벌이며 우승을 나눠 차지하기도 했다. 당연히 라이벌 의식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서로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해도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이 아니라 ‘팀 대 팀’ 간 대결로 봤어요. 경기가 감독끼리 대결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지는 거죠. 라이벌 의식이란 건...제가 경험이 조금 더 있어서 접고 가는 거지만, 그 감독이 선배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박 전 감독은 한 시즌만 더 했더라면 이정철 전 감독과 동률인 여자부 최다 경기 기록(240경기)을 경신할 수 있었고, 두 시즌을 더 해서 10년을 채웠더라면 이정철 전 감독의 최다승(157승 ※현재 125승)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기록 행진이 멈춘 것이지 끝난 건 아닌 것 같다. 복귀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안이 온다면 (지도자로 현장 복귀를) 마다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복귀한다면 제 자신에게 인색하지 않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지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감독 시작했을 때는 어설펐지만, 경험이 어느 정도 쌓였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요. 물론, 감독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을 거고요. 어쨌든 현장에 남아 있으려고 합니다.”
‘중고’ 신인상 이윤정
신인상을 받은 이윤정은 그냥 신인도 아니고 ‘중고’이자 ‘무늬만 신인’이어서 더욱 화제였다. 실업 무대 수원시청에서 5년 활약하다가 프로에 뛰어들어 신인상을 거머쥔 첫 사례여서 그랬다.
고교 졸업반 때 “더 많은 경기 출전을 위해 실업팀으로 갔다”는 이윤정은 한 계단씩 스텝을 밟아왔지만, 욕심도 야망도 많아 보였다. 다시 프로와 실업 선택권이 주어지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바로 프로팀으로 올 거예요. 고3 때 내린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지만, 두 무대를 모두 경험해보니 그래도 프로를 선택할 거예요. 그때 프로에 갔더라면 신인상을 지금 보다 더 받고 싶고, 욕심이 났을 거고요. 욕망이 생겼을 거예요. 하하.”
첫 시즌, 프로와 실업 무대 간 차이도 느꼈다. 그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외국인 선수와 백어택이 키워드였다.
“실업팀에서는 아무래도 전위 공격수가 있으니까 백어택을 거의 시도를 하지 않게 되고, 연습도 많이 하지 않았죠. 반대로 프로에 와서는 외국인 선수도 있고, 힘이 있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에 시도를 많이 하게 됐죠. 그래서 프로에 와서 백어택을 많이 배우고 (외국인 선수) 케이시와 호흡을 많이 맞췄어요. 훈련 때 켈시와는 제가 ‘공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켈시가 ‘공 낮게 줘’ 이러면서 서로 얘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이윤정하면 ‘유교 세터’란 별명이 단번에 떠오른다. 서브를 하기 전에 심판에게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 때문이다. 이윤정은 일종의 버릇이자 루틴이 되어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서브 치기’ 전에 인사를 해온 건데요. 프로에서도 나만의 이런 루틴에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유교 세터’ 얘기가 계속 나와서 한번은 인사를 안 하고 서브를 해봤는데 서브가 잘 안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인사하고 서브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프로와 실업 간의 차이도 궁금했다. 가장 먼저 관중과 훈련량에 놀랐다고 했다.
“처음에 운동량이 너무 많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이게 프로구나’ 싶기도 하면서 적응하는데 힘들었어요. 김천 숙소에서 오전, 오후, 야간 이렇게 하루에 세 번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오히려 지금은 훈련을 많이 안하면 걱정돼요. 실업 시절엔 1년에 대회가 3~4개라 경기 수가 적어서 훈련도 그만큼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또 대회에 나가면 관중도 많지 않았는데, 프로에 와서는 매 경기 많은 팬이 찾아오니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죠.”
팬들도 하나둘씩 생기고 에피소드도 쌓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경기 끝나고 선수단 버스에 타려는데, 한 친구가 팬이라며 편지와 선물을 주더라고요. 그 친구 옆에 있던 친구도 제 팬이라고 하는데, 얘기하다보니 둘의 이름이 똑같더라고요. 유림이. 나중에는 둘이 친해져서 같이 경기 보러 오더라고요. 고마워, 유림이들아.”
그렇게 첫 시즌이 지나갔고, 이제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더 이상 신인도 아니다.
“언니들이랑 플레이오프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좋은 성적을 기대했는데 시즌이 조기 종료가 되니 속상하기도 했어요. 꿈같고 아쉬움이 남는 시즌인데, 두 번째 시즌에선 개인상 욕심 보다는 팀이 우승할 수 있게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우승하고도 MVP 2위’ 곽승석
2021~2022시즌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마지막 경기였던 남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이었다. 시리즈 전적 1승1패, 마지막 5세트에서 듀스 끝에 21-20. 대한항공은 극적으로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아직도 여운이 남는 역대급 혈투였다.
대한항공이 다시 한번 통합우승을 차지한데는 곽승석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 준우승팀 KB손해보험의 ‘괴물 공격수’ 케이타에 밀리긴 했지만 ‘MVP 2위’도 했다.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가득한 시즌이었다.
“제가 없으면 누가 봐도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당연하죠. (Q.그럼 우승의 지분은 어느 정도일까요?) 지분이라...50퍼센트하겠습니다. 거의 절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하. 제가 살이 워낙 안찌는 체질이고 살이 빠져도 얼굴부터 빠지긴 해서 불쌍해 보이기는 하는데, 올 시즌 그만큼 많이 뛰어서 그런 것도 있겠죠.”
시즌 종료와 함께 FA 자격을 얻은 곽승석은 출연 이후 대한항공과 총액 7억1000만원(연봉 5억원, 옵션 2억1000만원)에 재계약했다. 우승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신인 드래프트 때 우리캐피탈로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운명인 건지 대한항공에 와서 지금껏 뛰고 있는데 ‘대한항공에 오지 안았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잘되려면 실력은 물론 운도 있어야 돼요. 저는 대한항공 와서 (승무원) 아내와 결혼까지 했잖아요. 하하.”
대한항공은 시즌을 앞두고 57세의 이탈리아 출신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과 결별하고 34세의 핀란드 출신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함께 했다. 새 체제에서 1라운드에선 6위까지 추락하는 위기도 겪었다.
“처음에 토미(감독 호칭) 나이 듣고 엄청 놀랐어요. 지도자 경력이 많다고 해도 나이가 어려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나이가 그 정도면 2살 위인 (한)선수형도 감독 못할 것 없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배구 철학과 열정은 확실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루 종일 배구 생각뿐이에요. 가벼운 훈련 분위기 속에서 기본틀을 깨는 배구? 상상력이 풍부한 배구를 하고요. 만화배구 느낌이랄까요. 머리로만 생각하는 배구를 몸으로 실천하는 배구를 했어요. 예전에는 하면 안된다고 했던 배구 기술들, 장난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토미가 푸시를 했어요.”
유난히 상복이 없는 곽승석은 대신 기록을 향해 뛰겠다고 밝혔다.
“내년에 3년 연속 통합우승이 목표고요. 개인적으로는 서브 200개(현재 196개), 레프트 최초 수비 10,000개(현재 7782개·통산 3위) 달성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배구가 신체조건이 좋아야 성공할 수 있는 건데, 꼭 그렇지만은 아닌 곽승석이라는 선수를 보면서 응원과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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