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선동열 국가대표팀 감독은 “올해 두산이 좋은 코치를 영입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토 고지(49) 두산 타격 코치를 두고 한 말이다.
고토 코치는 1987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2005년까지 15시즌 동안 백업 내야수로 뛰었다. 현역 은퇴한 뒤인 2006년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상위 싱글A 팀인 탬파 양키스(현 탬파 타폰스) 코치로 미국 연수를 했다.
선 감독은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 프로야구, 특히 센트럴리그의 야구 문화는 보수적이다. 한국야구보다 더 위계적이며 전통이 강조된다. 고토 코치처럼 미국에서 코치로 뛰며 다른 나라 야구를 접하려는 시도도 많지 않다.
교류는 좋은 것이다. 두산 구단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김태형 감독이 지난해 시즌 뒤 일본 코치 영입 요청했다”며 “고토 코치의 경험과 능력이 팀의 자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토 코치는 2007년 일본에 귀국한 뒤 독립리그 니가타 알비렉스 감독을 시작으로 여러 팀에서 지도자로 일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친정팀 요미우리에서 2, 3군 유망주들을 코칭했다.
그의 이력 중 특이한 데가 있다. 2008년 어린이 야구교실인 도쿄 거츠에서 유치원생을 상대로 야구를 가르쳤다. 28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고토 코치는 자신의 지도자 생활에서 이때의 경험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왜 그럴까.
-한국 음식은 입맛에 맞는가.
굉장히 좋아한다. 잘 맞는다.
-두산 입단 전 한국야구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나. 한국에 와서 달라진 게 있나.
내가 갖고 있던 한국야구의 이미지는 원래 투수였다. 요미우리 선수 시절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등이 일본에서 뛰었다. 역시 투수쪽이 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와선 엄청나게 바뀌었다. 타자들이 미국과 가까운 파워를 갖고 있다. 스피드도 못지않다. 이 점은 일본보다 낫다고 느꼈다. 타격에 매력이 있는 리그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KBO리그는 타고투저 현상이다. 일본은 반대로 투고타저다.
일본은 역시 섬나라다.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다. 50년 전 야구처럼 점수가 잘 나지 않고 투수력에 집중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도 반발력이 좋은 공인구를 사용했을 때 타격이 강하지 않았나. 그러다 다시 투고타저로 돌아왔다.
간단히 말하면, 일본은 큰 점수를 만들려 하지 않고, 한 점 한 점씩 내는 야구에 집중한다. 그러니 투수력이 더 강조된다. 타자는 이런 투수들을 이겨내기 위해 작은 것을 노리게 된다. 타자들의 이런 성향은 다시 투수들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선동열 감독이 고토 코치에 대해 호평했다.
아니다. 현역 시절 선동열 투수에게 난 그냥 아웃카운트 하나로 계산되는 선수였다. 선동열씨가 대단한 투수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마이너리그로 가서 도전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높이 샀다.
한국도 그렇지만, 코치가 하지 말아야할 것은 모르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시대는 매우 빠르게 바뀐다.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치는 매일, 매주, 매월 배워서 시대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야구관이나 철학이 바뀐 적은 있었나.
지금까지는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을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게 목표다. 내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주고 싶은 게 한국에 온 절반의 이유다. 나머지 절반은 한국 야구를 내가 공부하겠다는 것이다. 늘 배우려 했기에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배운 것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역시나 ‘플레이어 퍼스트(Player First)’. 일본 야구에서는 지도자가 선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형이다. 지도자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선수를 우선해서 생각하고, 코치가 공부해 가르치는 문화가 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외국 선수가 많이 뛴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선수는 자기를 어필해야 코치 눈에 들 수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상관없다. 팀이 제일이고 선수가 제일이기 때문에, 팀을 위해 선수가 어필하는 것은 좋다.
-아이치현 출신으로 고교 시절 동향의 마키하라 히로미(통산 159승)가 요미우리에 입단하자 “배신자”라고 비난했다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도 요미우리에 입단했는데.
어렸으니까(웃음). 드래프트에서 뽑히는 선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프로야구에서 열심히 할 생각만 해야 한다. 그때 일은 어릴 때의 패기 정도다.
-초등학교 팀에서 같이 뛰었던 곤도 이사무는 주니치에 입단해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어린 투수가 롱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까.
일본에서 고시엔은 어떤 야구인이라도 꿈꾸는 대회다. 고시엔 야구에선 투수가 한 경기에 300구, 두 경기에 600구를 던지는 걸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치의 일은 그런 혹사를 막는 것이다. 선수를 망쳐서는 안 된다.
-요미우리 코치 시절 ‘블라인드 타법’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블라인드 타법’은 무엇인가.
그 이름은 내가 아니라 외야수 가메이 요시유키가 붙였다. 가메이 선수가 어떤 의미로 이름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멘탈적인 이야기다. 타자는 임팩트, 즉 공을 배트에 맞히기까지는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임팩트 후에는 타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임팩트에 집중해 공을 맞히는 데까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어떡하든 공을 맞히는 데 집중한다면 투 아웃 만루에도 긴장하지 않을 것이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지금 두산 선수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장타를 만들기 위해 타구 발사각도를 높이는 코칭이 유행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그에 맞는 선수와 아닌 선수를 구분해야 한다. 맞지 않는 선수에게 가르치면 안 된다.
-KBO리그에서도 가장 생산성이 높은 타구 각도는 메이저리그보다 낮다는 연구가 있다. 홈런 스윙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더 효과적이라는 뜻인데.
타자는 2.5초 안에 쳐라, 외야수는 3,5초 안에 타구를 잡으라는 말이 있다. 빠른 라인드라이브 타구는 외야수에게 공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안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프로 코치 뿐 아니라 독립리그, 대학코치, 방송해설자, 어린이 야구교실 등에서 다양한 지도자 경험을 했다. 가장 도움이 된 경험은 어디에서였나.
유치원 어린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가장 좋았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린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수 있다면 프로 선수에게도 확실히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언어가 다른 선수들도 가르칠 수 있다.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등 모국어는 달라도 선수가 어떤 말을 하려 하는지 느낌이 온다. 야구니까. 물론 통역이 필요하다. 어린이를 가르친 건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코치를 처음 시작할 때 지식이 중요한지, 감각이 중요한지를 생각했다. 가령 나는 왼손잡이 선수의 송구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하지만 (우투좌타인) 나는 그 감각은 모른다. 왼손잡이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건 지식은 없어도 그냥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을 가르치려면 그 아이의 몸속에 들어가야 한다. 어린이의 몸을 움직여주면서 손목과 어깨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칠 수 있다. 두산에서도 김재환 등 여러 선수들의 몸속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그린 뒤 어떻게 쳐야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구조적인 감각에 대한 이야기다.
-현역 시절 요미우리에는 우에하라 고지 등 스타 선수가 많았다.
야구 선수로 뛴다는 건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에하라와 같은 팀이었던 건 다행이었다. 우에하라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있을 때 우리 딸이 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공짜로 유학을 보낸 셈이다(웃음). 야구를 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도 여러 인연이 만들어졌다. 마쓰이 히데키도 그렇고, 지금 다카하시 요시노부 감독도 그렇다.
-당시 요미우리는 스타도 많았지만 벤치도 강했다. 주전 경쟁은 어땠나.
경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알고 뛰는 게 중요했다. 나는 초일류의 벤치 멤버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레귤러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경기 후반에 제대로 뛰기 위해 노력했다. 1990년대 요미우리는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승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올해 요미우리의 성적은 어떨까.
점쟁이가 아니지만, 부상 없이 우승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 야구 팬들도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선 크게 부진했는데.
자신의 감각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것 같다. 마운드의 단단함 정도, 공의 실밥 등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선수, 다른 코치, 다른 구장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외국에 혼자 있으면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두산 코치들이 관심을 많이 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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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고지(49) 두산 타격 코치를 두고 한 말이다.
고토 코치는 1987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2005년까지 15시즌 동안 백업 내야수로 뛰었다. 현역 은퇴한 뒤인 2006년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상위 싱글A 팀인 탬파 양키스(현 탬파 타폰스) 코치로 미국 연수를 했다.
선 감독은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 프로야구, 특히 센트럴리그의 야구 문화는 보수적이다. 한국야구보다 더 위계적이며 전통이 강조된다. 고토 코치처럼 미국에서 코치로 뛰며 다른 나라 야구를 접하려는 시도도 많지 않다.
교류는 좋은 것이다. 두산 구단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김태형 감독이 지난해 시즌 뒤 일본 코치 영입 요청했다”며 “고토 코치의 경험과 능력이 팀의 자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토 코치는 2007년 일본에 귀국한 뒤 독립리그 니가타 알비렉스 감독을 시작으로 여러 팀에서 지도자로 일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친정팀 요미우리에서 2, 3군 유망주들을 코칭했다.
그의 이력 중 특이한 데가 있다. 2008년 어린이 야구교실인 도쿄 거츠에서 유치원생을 상대로 야구를 가르쳤다. 28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고토 코치는 자신의 지도자 생활에서 이때의 경험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왜 그럴까.
-한국 음식은 입맛에 맞는가.
굉장히 좋아한다. 잘 맞는다.
-두산 입단 전 한국야구에 대한 이미지는 어땠나. 한국에 와서 달라진 게 있나.
내가 갖고 있던 한국야구의 이미지는 원래 투수였다. 요미우리 선수 시절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등이 일본에서 뛰었다. 역시 투수쪽이 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와선 엄청나게 바뀌었다. 타자들이 미국과 가까운 파워를 갖고 있다. 스피드도 못지않다. 이 점은 일본보다 낫다고 느꼈다. 타격에 매력이 있는 리그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KBO리그는 타고투저 현상이다. 일본은 반대로 투고타저다.
일본은 역시 섬나라다.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다. 50년 전 야구처럼 점수가 잘 나지 않고 투수력에 집중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도 반발력이 좋은 공인구를 사용했을 때 타격이 강하지 않았나. 그러다 다시 투고타저로 돌아왔다.
간단히 말하면, 일본은 큰 점수를 만들려 하지 않고, 한 점 한 점씩 내는 야구에 집중한다. 그러니 투수력이 더 강조된다. 타자는 이런 투수들을 이겨내기 위해 작은 것을 노리게 된다. 타자들의 이런 성향은 다시 투수들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선동열 감독이 고토 코치에 대해 호평했다.
아니다. 현역 시절 선동열 투수에게 난 그냥 아웃카운트 하나로 계산되는 선수였다. 선동열씨가 대단한 투수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마이너리그로 가서 도전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높이 샀다.
한국도 그렇지만, 코치가 하지 말아야할 것은 모르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시대는 매우 빠르게 바뀐다.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치는 매일, 매주, 매월 배워서 시대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야구관이나 철학이 바뀐 적은 있었나.
지금까지는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을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게 목표다. 내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주고 싶은 게 한국에 온 절반의 이유다. 나머지 절반은 한국 야구를 내가 공부하겠다는 것이다. 늘 배우려 했기에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배운 것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역시나 ‘플레이어 퍼스트(Player First)’. 일본 야구에서는 지도자가 선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형이다. 지도자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선수를 우선해서 생각하고, 코치가 공부해 가르치는 문화가 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외국 선수가 많이 뛴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선수는 자기를 어필해야 코치 눈에 들 수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상관없다. 팀이 제일이고 선수가 제일이기 때문에, 팀을 위해 선수가 어필하는 것은 좋다.
-아이치현 출신으로 고교 시절 동향의 마키하라 히로미(통산 159승)가 요미우리에 입단하자 “배신자”라고 비난했다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도 요미우리에 입단했는데.
어렸으니까(웃음). 드래프트에서 뽑히는 선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프로야구에서 열심히 할 생각만 해야 한다. 그때 일은 어릴 때의 패기 정도다.
-초등학교 팀에서 같이 뛰었던 곤도 이사무는 주니치에 입단해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어린 투수가 롱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까.
일본에서 고시엔은 어떤 야구인이라도 꿈꾸는 대회다. 고시엔 야구에선 투수가 한 경기에 300구, 두 경기에 600구를 던지는 걸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치의 일은 그런 혹사를 막는 것이다. 선수를 망쳐서는 안 된다.
-요미우리 코치 시절 ‘블라인드 타법’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블라인드 타법’은 무엇인가.
그 이름은 내가 아니라 외야수 가메이 요시유키가 붙였다. 가메이 선수가 어떤 의미로 이름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멘탈적인 이야기다. 타자는 임팩트, 즉 공을 배트에 맞히기까지는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임팩트 후에는 타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임팩트에 집중해 공을 맞히는 데까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어떡하든 공을 맞히는 데 집중한다면 투 아웃 만루에도 긴장하지 않을 것이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지금 두산 선수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장타를 만들기 위해 타구 발사각도를 높이는 코칭이 유행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그에 맞는 선수와 아닌 선수를 구분해야 한다. 맞지 않는 선수에게 가르치면 안 된다.
-KBO리그에서도 가장 생산성이 높은 타구 각도는 메이저리그보다 낮다는 연구가 있다. 홈런 스윙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더 효과적이라는 뜻인데.
타자는 2.5초 안에 쳐라, 외야수는 3,5초 안에 타구를 잡으라는 말이 있다. 빠른 라인드라이브 타구는 외야수에게 공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안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프로 코치 뿐 아니라 독립리그, 대학코치, 방송해설자, 어린이 야구교실 등에서 다양한 지도자 경험을 했다. 가장 도움이 된 경험은 어디에서였나.
유치원 어린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가장 좋았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린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수 있다면 프로 선수에게도 확실히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언어가 다른 선수들도 가르칠 수 있다.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등 모국어는 달라도 선수가 어떤 말을 하려 하는지 느낌이 온다. 야구니까. 물론 통역이 필요하다. 어린이를 가르친 건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코치를 처음 시작할 때 지식이 중요한지, 감각이 중요한지를 생각했다. 가령 나는 왼손잡이 선수의 송구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하지만 (우투좌타인) 나는 그 감각은 모른다. 왼손잡이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건 지식은 없어도 그냥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을 가르치려면 그 아이의 몸속에 들어가야 한다. 어린이의 몸을 움직여주면서 손목과 어깨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칠 수 있다. 두산에서도 김재환 등 여러 선수들의 몸속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그린 뒤 어떻게 쳐야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구조적인 감각에 대한 이야기다.
-현역 시절 요미우리에는 우에하라 고지 등 스타 선수가 많았다.
야구 선수로 뛴다는 건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에하라와 같은 팀이었던 건 다행이었다. 우에하라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있을 때 우리 딸이 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공짜로 유학을 보낸 셈이다(웃음). 야구를 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도 여러 인연이 만들어졌다. 마쓰이 히데키도 그렇고, 지금 다카하시 요시노부 감독도 그렇다.
-당시 요미우리는 스타도 많았지만 벤치도 강했다. 주전 경쟁은 어땠나.
경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알고 뛰는 게 중요했다. 나는 초일류의 벤치 멤버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레귤러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경기 후반에 제대로 뛰기 위해 노력했다. 1990년대 요미우리는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승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올해 요미우리의 성적은 어떨까.
점쟁이가 아니지만, 부상 없이 우승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 야구 팬들도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선 크게 부진했는데.
자신의 감각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것 같다. 마운드의 단단함 정도, 공의 실밥 등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선수, 다른 코치, 다른 구장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외국에 혼자 있으면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두산 코치들이 관심을 많이 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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