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롯데 자이언츠의 2017년은 찬란했다. 해외진출을 했던 빅보이 이대호(35)가 6년 만에 팀에 돌아오면서 5년 만에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내심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던 1992년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마! 함 해보입시더”라는 레전드 故 최동원(2011년 작고)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했던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가을야구에 돌입했을 때만 해도 즐거운 상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지역 라이벌로 자리를 잡은 NC다이노스에 2승3패로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외국인 에이스 브룩스 레일리(29)가 불의의 부상을 당한 게 뼈아팠지만, 2017년에도 롯데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우승, 이젠 롯데에게는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KBO리그 10개 구단 중 우승 경험이 없는 NC, 넥센 히어로즈(전신격인 현대 유니콘스는 4회 우승 경험이 있다), kt위즈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우승하지 못한 팀이 롯데다. 롯데는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최동원이 활약했던 1984년과 1992년이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1984년 후기리그가 전부다. 1989년부터 시작된 단일리그에서는 정규시즌을 석권한 적도 없다. 1982년 프로 원년부터 구단 이름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이지만, 롯데는 성적 면에서는 초라하다. 오히려 2000년대 ‘8888577’이라고 불리는 7년 동안의 암흑기만 각인돼 있다.
롯데가 마지막 우승을 한 지가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25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인터넷 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여러 글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당시 태어난 1992년생들이 한국나이로 스물여섯살이고, 올해 롯데의 에이스로 부상한 박세웅(22)이 1995년생이라는 점을 드는 이들도 있다. 현재 팀내 투수들 중 최고참급인 송승준(37)이 당시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대호는 막 야구를 시작했을 때인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이후 민간인 출신 정권이 들어섰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대통령이 3명이나 배출됐다. 그 중 두 명은 대통령 유세 기간 중 롯데의 상징과도 같은 응원가인 ‘부산갈매기’를 열창하고 당선됐다. 하지만 롯데는 우승을 못하고 있다. 야구 커뮤니티 등에서 이런 점을 꼬집는 글들이 즐비하다.
롯데는 가장 충성도 높은 팬들과 함께 하고 있는 전통의 팀이다. 그렇다면 왜 오랜 기간 우승과 거리가 먼 팀으로 남아있을까.
◆ 팀 성적과는 별개의 프로야구 올스타 최강군단
롯데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빅마켓, 인기 구단이다. 2년 전 FA로 롯데에 입단한 마무리 투수 손승락(35)은 “롯데는 선수들이 한 번쯤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응원 열기가 뜨거운 팀이다”라고 했다. 이런 롯데가 배출한 스타들도 즐비하다. 故최동원, 故 유두열, 김용희, 김용철 등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부터 1992년 우승을 이끈 故박동희, 염종석, 박정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던 마해영, 주형광 등도 있고, 2005년 포스트시즌을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배출한 최초의 MVP인 손민한부터 이대호, 강민호, 송승준,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 등이 있었다. 또 롯데는 올스타가 많이 뽑히고, 올스타전 MVP인 미스터올스타(15차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구단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명문구단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롯데가 남긴 성적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국시리즈 우승 2회도 그렇지만, 마지막 한국시리즈 경험도 18년 전인 1999년이다. 2000년대 대부분은 암흑기로 보냈다. 이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부터 양승호 감독 시절인 2012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후 4년 동안은 다시 가을야구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 구조적인 문제, 36년째 아쉬움만 남는 구단 운영
사실 선수들의 인적 구성보다는 구단 운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긴 하다. 여기서 나오는 게 ‘선수 홀대론’이다. 앞서 언급한 스타급 선수들 중 현재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있거나, 롯데에서 은퇴한 이들이 의외로 적다. 故 최동원만 하더라도 구단의 부당한 처우에 연봉협상이 항상 진통이었고, 선수협 파동으로 삼성으로 트레이드돼, 삼성에서 은퇴했다. 1992년 한국시리즈 MVP인 故 박동희도 삼성에서 은퇴했다. 마해영은 롯데에서 은퇴하긴 했지만, 역시 선수협의 주역이었다는 이유로 삼성으로 트레이드 돼, KIA와 LG를 거쳐 팀에 돌아온 케이스다. 5년 간 일본과 미국을 다녀온 이대호도 해외진출 직전인 2011년 7000만원 차이로 연봉조정신청을 한 적이 있다. 롯데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선수들이 구단에 정을 붙이기가 참 힘들다. 선배들의 이런 과정을 지켜본 후배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에도 선수와 구단 사이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팀이 롯데다. 두산으로 떠난 조쉬 린드블럼이 계약과 관련해 롯데와의 뒷이야기를 밝혀 논란이 일었다. 2014년에는 그 유명한 CCTV사찰 사건이 있었다. 원정 숙소에서 선수들이 늦게까지 돌아다니는지 CCTV로 감시한 사건이다. 이후 구단 운영이 크게 바뀌었냐는 질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는 반응이 많다.
6년 전 당시 롯데 구단의 수장은 “20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구단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스포츠 구단이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당연한 얘기지만, 어떻게 우승할지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사직구장을 가득 채우는 팬들을 생각하면서 2018년부터라도 롯데가 짚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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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이젠 롯데에게는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KBO리그 10개 구단 중 우승 경험이 없는 NC, 넥센 히어로즈(전신격인 현대 유니콘스는 4회 우승 경험이 있다), kt위즈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우승하지 못한 팀이 롯데다. 롯데는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최동원이 활약했던 1984년과 1992년이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1984년 후기리그가 전부다. 1989년부터 시작된 단일리그에서는 정규시즌을 석권한 적도 없다. 1982년 프로 원년부터 구단 이름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이지만, 롯데는 성적 면에서는 초라하다. 오히려 2000년대 ‘8888577’이라고 불리는 7년 동안의 암흑기만 각인돼 있다.
롯데가 마지막 우승을 한 지가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25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인터넷 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여러 글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당시 태어난 1992년생들이 한국나이로 스물여섯살이고, 올해 롯데의 에이스로 부상한 박세웅(22)이 1995년생이라는 점을 드는 이들도 있다. 현재 팀내 투수들 중 최고참급인 송승준(37)이 당시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대호는 막 야구를 시작했을 때인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이기도 했다. 이후 민간인 출신 정권이 들어섰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대통령이 3명이나 배출됐다. 그 중 두 명은 대통령 유세 기간 중 롯데의 상징과도 같은 응원가인 ‘부산갈매기’를 열창하고 당선됐다. 하지만 롯데는 우승을 못하고 있다. 야구 커뮤니티 등에서 이런 점을 꼬집는 글들이 즐비하다.
롯데는 가장 충성도 높은 팬들과 함께 하고 있는 전통의 팀이다. 그렇다면 왜 오랜 기간 우승과 거리가 먼 팀으로 남아있을까.
◆ 팀 성적과는 별개의 프로야구 올스타 최강군단
롯데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빅마켓, 인기 구단이다. 2년 전 FA로 롯데에 입단한 마무리 투수 손승락(35)은 “롯데는 선수들이 한 번쯤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응원 열기가 뜨거운 팀이다”라고 했다. 이런 롯데가 배출한 스타들도 즐비하다. 故최동원, 故 유두열, 김용희, 김용철 등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부터 1992년 우승을 이끈 故박동희, 염종석, 박정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던 마해영, 주형광 등도 있고, 2005년 포스트시즌을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배출한 최초의 MVP인 손민한부터 이대호, 강민호, 송승준,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 등이 있었다. 또 롯데는 올스타가 많이 뽑히고, 올스타전 MVP인 미스터올스타(15차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구단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명문구단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롯데가 남긴 성적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한국시리즈 우승 2회도 그렇지만, 마지막 한국시리즈 경험도 18년 전인 1999년이다. 2000년대 대부분은 암흑기로 보냈다. 이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부터 양승호 감독 시절인 2012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후 4년 동안은 다시 가을야구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롯데의 올 겨울 최고 소득은 손아섭과의 재계약이다. 하지만 안방마님 강민호는 팀을 떠났다. 사진=김영구 기자
이런 점 때문에 자기 색깔이 강한 스타들이 많아서 팀워크가 단단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이나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 과정에서 보여준 근성을 생각하면, 팀워크가 단단치 못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올해 경기 운영만 봐도 롯데는 역전승을 가장 많이 한 팀이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가을 단기전에서 과거와 달리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0년 이후 포스트시즌에서 롯데가 상위 스테이지에 올라간 것은 2012년 딱 한 차례뿐이다.◆ 구조적인 문제, 36년째 아쉬움만 남는 구단 운영
사실 선수들의 인적 구성보다는 구단 운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긴 하다. 여기서 나오는 게 ‘선수 홀대론’이다. 앞서 언급한 스타급 선수들 중 현재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있거나, 롯데에서 은퇴한 이들이 의외로 적다. 故 최동원만 하더라도 구단의 부당한 처우에 연봉협상이 항상 진통이었고, 선수협 파동으로 삼성으로 트레이드돼, 삼성에서 은퇴했다. 1992년 한국시리즈 MVP인 故 박동희도 삼성에서 은퇴했다. 마해영은 롯데에서 은퇴하긴 했지만, 역시 선수협의 주역이었다는 이유로 삼성으로 트레이드 돼, KIA와 LG를 거쳐 팀에 돌아온 케이스다. 5년 간 일본과 미국을 다녀온 이대호도 해외진출 직전인 2011년 7000만원 차이로 연봉조정신청을 한 적이 있다. 롯데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선수들이 구단에 정을 붙이기가 참 힘들다. 선배들의 이런 과정을 지켜본 후배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NC와의 준플레이오프 당시 부산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롯데팬들. 25년째 롯데의 우승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올해 스토브리그만 하더라도 손아섭은 팀에 남았지만, 안방마님 강민호(32)가 삼성으로 이적했다. 올해 롯데의 내부 FA가 5명으로 10개 구단 중 가장 많았다고 하더라도, FA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내부 FA 유출 구단이 바로 롯데라는 점은 다시 곱씹어볼 부분이다.더구나 최근에도 선수와 구단 사이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팀이 롯데다. 두산으로 떠난 조쉬 린드블럼이 계약과 관련해 롯데와의 뒷이야기를 밝혀 논란이 일었다. 2014년에는 그 유명한 CCTV사찰 사건이 있었다. 원정 숙소에서 선수들이 늦게까지 돌아다니는지 CCTV로 감시한 사건이다. 이후 구단 운영이 크게 바뀌었냐는 질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는 반응이 많다.
6년 전 당시 롯데 구단의 수장은 “20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구단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스포츠 구단이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당연한 얘기지만, 어떻게 우승할지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사직구장을 가득 채우는 팬들을 생각하면서 2018년부터라도 롯데가 짚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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