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한이정 기자] 매서운 타격감으로 5년 연속 포스트시즌을 노리고 있는 넥센. 중심타선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타자가 있다. 신인인가 싶을 정도로 생소한 이름이지만 타격감 하나 만큼은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 올해로 프로 9년차를 맞은 장영석(27) 이야기다.
지난 7월 8일 1군의 부름을 받은 장영석은 43경기 출전해 119타수 38안타 9홈런 26타점을 기록 중이다. 특히 득점권 타율은 0.371에 달한다. 결정적일 때 한 방을 때리며 야구팬에게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리고 있다. 지난 3일 고척 KIA전에서 1-7을 8-7로 뒤집는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리며 팀에 짜릿한 역전승을 안겼다. 그러나 1군에 올라오기까지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 거포유망주에서 투수로…다시 타자로
부천고 출신 장영석은 ‘거포유망주’였다. 고교 시절 이대호 김동주 등 리그 정상급 타자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투-타 모두 재능을 보였기에 더 돋보였다. 2008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도 뽑혀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촉망받던 거포 유망주는 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3순위로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입단까지 순탄했지만 프로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데뷔 첫 해 16경기 출전해 타율 0.182를 기록했다. 2010년에도 64경기 출전했으나 타율 0.232(138타수 32안타)에 그쳤다.
장영석은 “신인 때는 뭣 모르고 무작정 덤벼들었고 2,3년차 때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너무 과했다. 연습했던 것보다 더 끌어내려고 하니까 과부하가 일어난 것 같다”고 회상했다.
부진하던 장영석이 선택한 돌파구는 ‘투수전향’이었다. 그러나 2011년 2경기 등판해 평균자책점 13.50을 기록하면서 다시 좌절을 맛봤다. 장영석은 “타자로 잘 안 되다보니 ‘투수를 한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투수로 전향했다”며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안일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선수로서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론 시간을 버린 것이기에 아쉽다“고 털어놨다.
장영석은 다시 타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역시 힘든 도전이었다. 그는 “투수 훈련을 받았기에 타자로 다시 전향했을 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잘 못했다. 엄청 헤맸다. 타격하는 법을 다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감을 찾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전했다.
◆ 절박했던 그때…연습, 또 연습
그는 “아침에 훈련 시작하기 전에 수비 연습하고 훈련이 끝나면 또 연습했다. 저녁까지 훈련했으니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며 “그 때는 절박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아침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공을 두 박스(운반용 노란상자 기준) 정도 받아서 따로 수비 연습을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당시 연습량은 어마어마했다. 장영석은 “어릴 때다.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시기였다”며 “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허문회 타격코치님이 스프링 캠프에서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기도 했지만 시키는 대로 다 했다”고 덧붙였다.
장영석은 “‘내가 이렇게 서서히 묻혀가는구나’ 생각했다. 무서웠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나는 나이를 먹어갔다. 이제 뭘 하고 살아야지 싶었고 막막했다. 야구선수로서 잊혀지는 게 두려웠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버텨나갔다. “가족들이 그 긴 시간 동안 옆에 있어줬다. 고등학생 때는 열심히 하라고 하더니 정작 힘들어 할 땐 ‘괜찮다. 편하게 해라’ 하면서 응원해줬다. 잔소리도 안 하더라”고 웃었다.
야구로 성공하겠다는 야망도 지울 수 없었다. 장영석은 “그만 두려고 했다면 그만 뒀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해온 게 너무 아까웠다. 이대호 선배님처럼 대한민국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홈런도 30개씩 빵빵 치고 싶었다”며 “근데 그게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열심히만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멘탈도 엄청 중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시기 덕분에 많이 단단해졌다고.
◆ ‘8전9기’ 장영석에게 찾아 온 봄날
힘든 시기를 보냈던 장영석이 올해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7월 넥센이 kt에 윤석민을 내주면서 내야수에 빈자리가 생겼고 장영석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드디어 봄날이 찾아온 것 같다는 질문에 초지일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장영석이 방긋 웃었다. 그는 “팬들이 알아봐주시고 매일 경기장에 나오니 하루하루 재밌고 감사하다. 마치 꿈만 같다”며 “기사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게 신기하더라. 하지만 신경 쓰면 흔들릴까봐 그냥 쓱 보고 만다”고 전했다.
팬도 많이 생겼다. “2군에 있을 때는 찾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은 많이 알아봐주시니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데뷔 9년 만에 봄날을 맞은 장영석은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건 두 자릿수 홈런 정도다. 타율 같은 욕심은 없고 내가 출루를 잘 해서 팀이 가을야구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장영석
1990년 5월 14일생
186cm 95kg
신도초-성남중-부천고-(방송통신대)-히어로즈-넥센
2009년 2차 1라운드 3순위 히어로즈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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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1군의 부름을 받은 장영석은 43경기 출전해 119타수 38안타 9홈런 26타점을 기록 중이다. 특히 득점권 타율은 0.371에 달한다. 결정적일 때 한 방을 때리며 야구팬에게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리고 있다. 지난 3일 고척 KIA전에서 1-7을 8-7로 뒤집는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리며 팀에 짜릿한 역전승을 안겼다. 그러나 1군에 올라오기까지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 거포유망주에서 투수로…다시 타자로
부천고 출신 장영석은 ‘거포유망주’였다. 고교 시절 이대호 김동주 등 리그 정상급 타자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투-타 모두 재능을 보였기에 더 돋보였다. 2008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도 뽑혀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촉망받던 거포 유망주는 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3순위로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입단까지 순탄했지만 프로의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다. 데뷔 첫 해 16경기 출전해 타율 0.182를 기록했다. 2010년에도 64경기 출전했으나 타율 0.232(138타수 32안타)에 그쳤다.
장영석은 “신인 때는 뭣 모르고 무작정 덤벼들었고 2,3년차 때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너무 과했다. 연습했던 것보다 더 끌어내려고 하니까 과부하가 일어난 것 같다”고 회상했다.
부진하던 장영석이 선택한 돌파구는 ‘투수전향’이었다. 그러나 2011년 2경기 등판해 평균자책점 13.50을 기록하면서 다시 좌절을 맛봤다. 장영석은 “타자로 잘 안 되다보니 ‘투수를 한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투수로 전향했다”며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안일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선수로서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론 시간을 버린 것이기에 아쉽다“고 털어놨다.
장영석은 다시 타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역시 힘든 도전이었다. 그는 “투수 훈련을 받았기에 타자로 다시 전향했을 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잘 못했다. 엄청 헤맸다. 타격하는 법을 다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감을 찾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전했다.
◆ 절박했던 그때…연습, 또 연습
힘들었을 당시를 생각하며 "가족들이 잔소리는 안 하더라"고 웃었던 장영석은 "늘 옆을 지켜줬던 가족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사진=김영구 기자
어쩔 수 없었다.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장영석은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타자로 돌아가기 위해선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 연습까지 해야 했다. 장영석은 “당시 자유 시간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훈련이 끝나면 힘들어서 자기 바빴다. 코치님이 수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셔서 수비 연습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그는 “아침에 훈련 시작하기 전에 수비 연습하고 훈련이 끝나면 또 연습했다. 저녁까지 훈련했으니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며 “그 때는 절박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아침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공을 두 박스(운반용 노란상자 기준) 정도 받아서 따로 수비 연습을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당시 연습량은 어마어마했다. 장영석은 “어릴 때다. 하라는 대로 다 하는 시기였다”며 “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허문회 타격코치님이 스프링 캠프에서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기도 했지만 시키는 대로 다 했다”고 덧붙였다.
7월 8일에 1군에 합류한 장영석은 3일 현재 43경기 출전해 타율 0.319를 기록 중이다. 사진=MK스포츠 DB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로서 빛을 보지 못했다. 2013-14년 경찰청 복무 후 팀에 돌아왔지만 장영석에게 기회는 없었다. 수년간 피와 땀을 흘리며 노력했으나 프로의 세계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무려 올해 초까지 그랬다.장영석은 “‘내가 이렇게 서서히 묻혀가는구나’ 생각했다. 무서웠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나는 나이를 먹어갔다. 이제 뭘 하고 살아야지 싶었고 막막했다. 야구선수로서 잊혀지는 게 두려웠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버텨나갔다. “가족들이 그 긴 시간 동안 옆에 있어줬다. 고등학생 때는 열심히 하라고 하더니 정작 힘들어 할 땐 ‘괜찮다. 편하게 해라’ 하면서 응원해줬다. 잔소리도 안 하더라”고 웃었다.
야구로 성공하겠다는 야망도 지울 수 없었다. 장영석은 “그만 두려고 했다면 그만 뒀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해온 게 너무 아까웠다. 이대호 선배님처럼 대한민국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홈런도 30개씩 빵빵 치고 싶었다”며 “근데 그게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열심히만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멘탈도 엄청 중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시기 덕분에 많이 단단해졌다고.
◆ ‘8전9기’ 장영석에게 찾아 온 봄날
힘든 시기를 보냈던 장영석이 올해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7월 넥센이 kt에 윤석민을 내주면서 내야수에 빈자리가 생겼고 장영석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장영석은 지난 3일 고척 KIA전 9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며 대역전승을 장식했다. 사진=김재현 기자
그는 “5월 콜업 됐을 때 잘 해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금방 2군으로 돌아갔다. 7월에 다시 올라올 땐 마음을 비우고 ‘연습한 것만이라도 이끌어내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의 노력을 믿고 경기에 임했던 그는 드디어 터졌다. 7월 23일 고척 kt전에서 7년 만에(2494일) 홈런을 쏘아 올린 이후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드디어 봄날이 찾아온 것 같다는 질문에 초지일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장영석이 방긋 웃었다. 그는 “팬들이 알아봐주시고 매일 경기장에 나오니 하루하루 재밌고 감사하다. 마치 꿈만 같다”며 “기사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게 신기하더라. 하지만 신경 쓰면 흔들릴까봐 그냥 쓱 보고 만다”고 전했다.
팬도 많이 생겼다. “2군에 있을 때는 찾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은 많이 알아봐주시니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데뷔 9년 만에 봄날을 맞은 장영석은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건 두 자릿수 홈런 정도다. 타율 같은 욕심은 없고 내가 출루를 잘 해서 팀이 가을야구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장영석
1990년 5월 14일생
186cm 95kg
신도초-성남중-부천고-(방송통신대)-히어로즈-넥센
2009년 2차 1라운드 3순위 히어로즈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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